▲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양궁 선수단을 격려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대를 이어 국내 양궁계 발전에 힘써온 정의선 부회장이 여자단체전에서 장혜진 선수에게 금메달 기념품을 전달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한국스포츠경제 김재웅]우리나라가 이번 리우올림픽 양궁 종목에 걸려있던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다. 남녀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덕분에 경제 위기에 빠져 침울했던 우리 국민들도 잠시나마 환호하며 웃음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양궁계의 업적을 보며 누구보다 더 크게 기뻐하는 부자가 있다. 바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그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다. 

이 부자는 지난 30여년 간 대를 이어 대한양궁협회 회장을 지냈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국내 양궁이 세계 최고로 올라서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봐왔던 셈이다.

양궁계가 1984년부터 누적 금메달 2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7개, 여자단체전 8연패, 전종목 금메달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데에는 이들 부자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 양궁계의 시각이다. 

이들 부자와 양궁계의 첫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LA올림픽 당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이었던 정몽구 회장은 양궁 경기를 지켜보고 양궁 지원을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취임한 후 정 회장은 현대정공에 여자양궁단, 현대제철에 남자양궁단을 창단하며 국내 양궁계 기반을 닦았다. 

이후 정몽구 회장은 1997년까지 대한양궁협회장을 4번이나 역임했고 이후 지금까지 명에회장까지 맡아왔다. 

그 동안 정몽구 회장은 비인기 종목인 양궁에 450억원이 넘는 돈과 숫자로는 셀 수 없는 열정을 쏟았다.

특히 체육단체 최초로 스포츠 과학화를 추진. 스포츠 과학기자재 도입 및 연구개발에 나섰던 것은 양궁계뿐 아니라 국내 스포츠계에서도 역사에 남을 업적이다. 

그 시작은 1986년이었다. 당시 미국 출장중이던 정몽구 회장은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양궁선수들을 생각하다가 결국 첨단장비인 심장박동수 측정기와 시력테스트기 등을 선물했다.

이후 정 회장은 선수들의 연습량, 성적 등을 전산화해 분석하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앞장섰으며 현대정공에서는 레이저를 활용한 연습용 활을 제작하기도 했다. 

국산 장비가 세계 양궁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데에도 이 같은 정몽구 회장의 노력이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90년대 말 외국의 활 제조업체에서 갑자기 성능이 좋은 제품을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이 때 정몽구 회장이 활 국산화에 앞장섰다. 관계자들을 독려하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양궁 관계자들과 제품들을 비교 평가했다. 

더불어 초등학생들에게도 국산 장비를 쓰도록 하고 일선학교에도 국산장비를 지원하는 등 활 산업 저변 확대에도 노력했다. 

덕분에 국내 양궁산업은 세계 최고수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반대로 국내 선수들에게 신제품을 주지 않았던 브랜드는 점유율이 곤두박질 쳤고 또 다른 유명 양궁 업체는 사업을 철수했다. 

그 밖에도 정몽구 회장의 양궁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우선 선수들이 어디서든 먹을 것 때문에 고생하지 않도록 한식을 챙겨주도록 하고 있다. 직접 자신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보내주기도 했다. 특히 1991년 폴란드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는 물 때문에 고생하는 선수들을 위해 스위스에서 좋은 물을 공수해다 줬던 적도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경기 직전 선수단을 초청해 만찬을 배풀었을 뿐 아니라 9,000여명 규모의 양궁 응원단도 결성했다. 

최근 들어 양궁팬 뿐 아니라 야구팬들에게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된 야구장 연습도 정몽구 회장에게서 시작된 훈련 코스다.

1996년 무렵 세계 양궁협회가 더 긴장감이 높은 새로운 경기방식을 도입하면서 정몽구 회장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끄러운 곳에서의 훈련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작된 이 훈련이 결국 야구장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정몽구 회장의 양궁사랑에 아들 정의선 부회장도 2005년부터 지금까지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지난 달 27일 12대 양궁회장 선거에서도 투표 참가자 전원 찬성을 얻으며 양궁계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불을 지핀 스포츠 과학화를 훨씬 크게 발전시켰다.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 최신 기술을 양궁 장비 및 훈련에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활 비파괴 검사’, 선수의 손에 꼭 맞는 ‘맞춤형 그립’, 불량 화살 분류에 도움을 주는 ‘슈팅머신’,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뇌파 측정 훈련’ 등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 역량을 활용한 재료, 동역학, 뇌과학, 3D 프린터 등 최신 기술을 접목해 훈련장비 개발 및 훈련기법을 적용됐다.

정의선 부회장은 양궁계 내실을 다지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2015년에 대한양궁협회가 사상 최초로 경기단체 조직운영 평가에서  최우수 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 정의선 부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취임했던 당시 먼저 '한국 양궁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하고 그에 따른 중장기적인 양궁 발전 플랜을 수립, 시행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양궁꿈나무 육성뿐 아니라 양궁 대중화 사업, 지도자와 심판 자질 향상, 스포츠 외교력 강화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일단 유소년부터 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체계가 있다. 특별지원으로 일선 초등학교 양궁장비와 중학교 장비 일부를 무상 지원하는 것 등이다.

이에 따라 양궁협회는 2013년에 초등부에 해당하는 유소년 대표 선수단을 신설, 선발해 장비, 훈련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유소년대표(초)-청소년대표(중)-후보선수(고)-대표상비군-국가대표에 이르는 우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완성했다.

양궁협회가 진짜 실력만으로 국가대표를 뽑는 '깨끗한' 단체로 이름이 알려진 것도 정의선 부회장 업적이 크다. 국가대표 선발전의 투명성을 높여서 실력만 있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공정한 시스템을 확고하게 정착시킨 것이다.

아울러 정의선 부회장 역시 정몽구 회장과 마찬가지로 선수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보다 젊은 세대인 만큼 젊은 선수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고 있다. 따로 약속을 잡는 대신 일부러 선수를 찾아가 식사를 하며 격려하거나 블루투스 스피커, 책과 같은 선물들도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주요 국제경기에는 현지에서 직접 응원을 펼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대표팀 출국 전날이었던 7월 27일에는 직접 선수촌을 방문해 선수들의 대회 준비 상황을 체크하고 저녁 식사를 함께 했었다. 

또 6일 오전 리우에 도착해서는 남자 단체전부터 확인했고 13일에는 남자 개인 결승전까지 주요 경기마다 관중석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며 선수들의 자신감을 붇돋아줬다.

선수들이 이용하는 시설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수단에 마련해준 트레일러 휴게실, 한식당 등을 직접 살피고 불편한 것은 없을지 확인했다. 

또 브라질 현지 치안 상태를 우려해 사설 경호원과 방탄차도 지급했다. 

아울러 경기장 인근 식당에 상파울루에서 한식 조리사를 초빙해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점심에는 한식 도시락까지 만들어 나눠줬다. 

덕분에 정의선 부회장과 현대차그룹은 이번 대회를 중계했던 해설위원들에게 올해 양궁 종목 석권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양궁게와 인연을 맺은 이후 선수들에게 통큰 포상도 계속해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 1억7,000만원을 시작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8억8,000만원까지 총 60여억원 규모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선수들과 코치진들에게 푸짐한 포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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