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메이저리그, 내가 왔다."

김광현(32ㆍ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미국 진출 후 첫 실전 등판에서 위력적인 투구로 산뜻한 첫인사를 건넸다.
 
김광현은 23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의 로저 딘 쉐보레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 시범경기 개막전에 중간 계투로 등판해 1이닝 2탈삼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짧은 첫 경험이었지만,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호투였다. 주무기인 슬라이더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두둑한 배짱과 공격적인 투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자신감을 얻었다.
 
◆ 위력적인 슬라이더ㆍ싸움닭 투구…데뷔전 합격점
 
김광현은 경기 전 보조 구장에서 러닝, 롱 토스,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었다. 미국 진출 후 첫 공식경기 등판이었지만 긴장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료들과 장난을 주고받는 등 시종일관 활기찬 모습이었다. 메인구장으로 이동해 투수 동료들과 함께 외야에서 타자들의 배팅볼을 줍기도 했다.
 
경기 시작 후 1루 측 불펜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김광현은 4회초부터 연습 투구를 하며 등판을 준비했다. 그리고 팀이 1-0으로 앞선 5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애초 김광현은 팀의 4번째 투수로 6회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잭 플래허티-다코타 허드슨에 이어 세 번째 투수로 나섰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박수를 보내며 ‘루키’ 김광현의 첫 등판을 반겼다.
 
출발부터 좋았다. 첫 타자 라이언 코델(28)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에서 시속 137㎞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해 첫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이후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렸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침착하게 투구를 이어갔다. 후속타자 르네 리베라(37)를 상대로 커브와 슬라이더, 빠른 공을 차례대로 던지며 유리한 카운트를 잡았다. 김광현은 결정구인 슬라이더를 연거푸 던졌지만,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지면서 풀카운트가 됐다. 이어 9구째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 벗어나면서 볼넷을 내줬다.
 
첫 출루를 허용했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후속타자 제이크 해거(27)에게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에서 시속 135㎞ 바깥쪽 낮은 슬라이더를 던져 삼진을 솎아냈다. 한숨 돌린 김광현은 후속 아메드 로사리오(25)를 2구 만에 3루 땅볼로 막고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세인트루이스 홈팬들은 환호했다. 일부 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김광현은 마이크 실트(52) 감독과 마이크 매덕스(59) 투수코치의 축하를 받았다.
 
투구 수는 19개였고, 14개가 스트라이크였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8㎞를 찍었다. 빠른 공 7개, 슬라이더 9개, 커브 3개를 던졌다.
 
◆ 들뜨지 않은 김광현… 감독은 ‘엄지척’
 
세인트루이스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은 김광현을 ‘KK’라 부르고 있다. 삼진을 표기하는 알파벳 ‘K’와 이름 이니셜(KKH)을 섞은 애칭이다. 김광현은 이날 자신의 별명과 어울리는 투구를 했다.
 
사령탑은 김광현의 성공적인 첫걸음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쉴트 감독은 “출발이 좋다”며 “김광현의 투구를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제구가 깔끔했다. 구종 중엔 슬라이더가 정말 완벽했다. 수준 높은 투구를 보여줬고 효율적이었다"고 칭찬했다.
 
구단 클럽하우스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한국 취재진과 만난 김광현은 “첫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을 다 한 번씩 던져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오늘 경기에서 얻어가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경기를 지켜보면서 한국 시범경기보다 조금 더 긴장감이 있어 더욱 집중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투구수가 1이닝치고는 많았다. 투수코치님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강조하는데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많이 못 던졌다. 회전수도 지난 라이브 피칭 때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 부족하다. 공인구에 적응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보완점에 대해 언급했다.
 
기분 좋은 출발이지만 김광현은 들뜨지 않았다. “아직 시범경기다. 시즌이 시작돼야 타자들도 진짜 모습으로 나올 것”이라며 “저도 시즌 시작 후 진짜 모습으로 등판해야 한다. 저와 상대팀 모두 첫 시범경기라 몸이 완벽하게 완성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향상된 실력으로 시즌에 만나야 한다. 그렇게 들뜨고 싶지 않다”고 자세를 낮췄다.
 
시범경기 첫 등판서 중간계투로 1이닝을 소화한 김광현은 다음 로테이션 때 선발로 등판할 전망이다.
쉴트 감독은 이날 시범경기가 끝날 때까지 김광현의 보직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선발 로테이션 진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호투해 확신을 심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인트루이스는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챙겼다. 2회 선두타자로 나온 타일러 오닐(25)이 솔로 홈런을 터뜨렸고, 8회 앤드류 니즈너(24)의 3루타와 딜런 칼슨(22)의 적시타로 쐐기를 박으며 2-0 승리를 거뒀다.

 

주피터(미국 플로리다주)=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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