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남의 눈치를 보는 법이 없다. 소신대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배우 정우성이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19일 개봉)을 통해 배우로서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극 중 돈에 눈이 먼 태영 역을 맡아 블랙코미디적인 인물로 허당기 가득한 모습을 보여줬다. 데뷔 28년 차 베테랑 배우지만 고착화된 이미지 대신 매 작품 캐릭터 변주를 시도하며 신선한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정우성은 “‘정우성이면 이래야 한다’는 공식을 늘 깨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 작품의 어떤 점에 끌렸나.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은 여러 인물들을 한 사건에 의해 희생시켜야 한다. 쓰고 버리는 거다. 사건을 위한 도구,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 영화는 그렇지 않다. 돈 가방이 앞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욕망을 보이지만, 개개인의 사연을 짧지만 밀도 있게 보여준다. 어떤 캐릭터도 버려지지 않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함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각 캐릭터들의 사연이 살아있다 보니 옴니버스식의 영화지만 하나의 스토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나리오에서는 극 중 연기한 태영이 웃긴 인물이 아니었다는데.

“처음부터 나한테는 태영이 그렇게 보였다. 완성될 때까지 그랬다. 어두운 얘기이다 보니 위트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태영의 생각이나 성격 속 허점들을 극대화시켜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담은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 웃긴 코미디는 아니지만 헛웃음 치면서 쉴 수 있는, 여백을 줄 수 있는 캐릭터가 되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태영을 통해 연희의 존재감을 계속해서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우성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는 호평이 나왔다.

“어떤 얼굴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성향의 한 인물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그래서 어떤 표정이나 모습을 발견한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성향의 인물을 만들었을 때 공감대가 형성이 되느냐, 설득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정우성이 연기한 거네’가 아니라 그냥 ‘태영이네’라고 했을 때 완성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성취감보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전도연과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몇 장면만으로 태영과 연희의 ‘케미’를 만들어야 하는 밀도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연희와 태영의 서사, 관계에 있어서의 갈등 등이 한 장면만으로 전달이 돼야 했다. 두 배우가 처음으로 만나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각자 기대도 있었을 것이고, 짧아서 아쉬움이 컸을 거다. 나는 전도연이 캐릭터를 구현하는 능력보다 현장에 임하는 자세도 보고 싶었는데, 역시 전도연이었다. 오랫동안 서있을 수 있던 이유는 현장에 대한 애정과 책임, 영화 전체에 대한 밸런스를 보는 깊은 사고가 있는 배우라는 걸 확인했고 기뻤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극 중 인물들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절박했던 순간이 있나.

“학교 자퇴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다. 얼마나 막연했겠나.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막연한 무언가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절박했지만 아무거나 막 잡지는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배우가 된다면 어떤 배우가 될지, 또 나라는 사람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그 시절의 정우성을 돌이켜보면, 외로움을 참 잘 즐겼구나 생각이 든다.”

-극 중 태영은 ‘럭키스트라이크’라는 담배가 인생에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 정우성에게 그런 게 있나.

“신념. 신념이라는 단어는 결국 삶이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기 생각이다. 신념이라는 것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혹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확장되고 긍정적인 요소로 나를 운반할 수 있는 자기 철학이 될 수 있는 거다. 고집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깨우쳐 나가야 한다. 삶에 대한 이해도 그렇고 관찰도 그렇고 관계에 대한 것도 그렇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담아내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이 내 인생의 신념으로 자리하는 거다.”

-신념이 흔들리게 하는 외부적 요소가 있을 것이다. 신념을 어떻게 지키려고 하나.

“계속해서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려고 한다. 나의 부족함, 그걸 인정했을 때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게 되고, 나를 인정했을 때 나를 지킬 수 있는 거다.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남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감추려고 할 거다. 괜찮은 사람으로만 보이려고 하고 그러다보면 자신이 없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바라볼 때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가 정우성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젊은 날 ‘똥개’를 선택했을 때 상응되는 반응들이 있었다. 너무 좋다는 반응도 있었고, ‘왜 정우성이 어울리지도 않는 사투리를 쓰면서 무릎 나온 트레이닝 복을 입고 방바닥을 기어야 하느냐’하며 인정을 해주지 않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태영을 보면서는 ‘재미있다, 의외의 표현인데 잘 어울리고 잘했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어떤 규정, 혹은 주어진 수식어 안에 머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의 시간을 이제 맞이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