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영화 ‘기생충’을 전세계에 알린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영화인이다. 사실 ‘기생충’ 이전에도 영화계에서 인지도는 상당했다. 곽경택 감독의 친동생이자 정지우 감독의 아내인 곽 대표는 1990년대 영화 전문지 키노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영화 홍보대행사 바른생활 대표, 영화제작사 청년필름 기획마케팅 실장, 영화제작사 엘 제이필름·신씨네 기획마케팅 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2010년부터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으로 활동했고 2013년 바른손필름 대표로 선임됐다.

국내를 대표하는 여성 영화인이자 청와대로부터 초청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인생 20년 만에 최고의 수확을 거둔 곽 대표는 “‘기생충’은 내 삶의 빅 이벤트다. 인복으로 시작해서 우주의 기운을 다 받았다”며 웃었다.

-길고 긴 ‘기생충’ 홍보가 끝났다.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행사나 업무가 있나.

“각종 제작권 침해 사례를 체크해야 한다. 세계 흥행 스코어도 받아야 한다. 또 블루레이 출시도 예정되어 있고, 국내 영화제도 좀 남았다. 봉 감독은 휴가를 가야 해서 제가 대리수상을 하러 가야 한다.”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국제 장편 영화상, 각본상까지 4관왕을 휩쓸었는데 수상 결과를 예상했나.

“사실 처음 ‘기생충’ 시놉시스를 읽고 칸의 성향을 봤을 때 경쟁부문 진출까지는 생각했다. 칸에서 관심을 갖는 감독님이니까. 황금종려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오스카(아카데미)도 현장에서 느낌을 보고 ‘어쩌면?’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예상하지는 못했다. 남이 겪었다고 해도 신기할 텐데 내 인생에 이런 일이 벌어져 놀라울 뿐이다.”

영화 '기생충' 스틸./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이 국제장편영화상 트로피를 곽신애 대표에게 맡겼다고 했다. 트로피 실제 소유권은 누가 갖고 있나.

“실제 소유권은 봉준호 감독 것이다. 우리도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 아카데미 측에 물어봤다. 아카데미 지침이 많이 까다롭더라. 결론적으로, 기여도가 가장 큰 사람이 해당 트로피를 갖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키 스태프(Key Staff)들에게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묻는다. 그리고 나서 시상 대상자들을 정한다. 예를 들어 우리 영화 같은 경우에 봉준호 감독이 영화 내용에 관해서는 재량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제작자로 이름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카데미에서는 제작자로 평가하더라. 그래서 작품상 수상 대상자 이름에 첫 번째는 내 이름, 두 번째는 감독 이름이 올라가있다.”

-아카데미 수상 후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남편 정지우 감독은 뭐라고 하던가.

“정지우 감독은 그냥 웃기만 했다. 지난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도 그랬다. 우리가 상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이는 지금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아카데미 때문에 미국에 갔으니 아들 얼굴 좀 보려고 ‘올래?’라고 했더니 ‘방학 때 봐요, 엄마’ 라고 했다. (웃음) 그리고 작품상 수상했을 때는 ‘수고하셨어요’라고 짧은 축하 인사만 문자로 왔다.”

-아카데미 수상에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오찬을 가졌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을 들은 게 있나.

“이 자리 자체가 뭔가 이슈를 정하거나 그런 게 없이 순수 축하를 하자는 의미로 마련된 것이었다. 각 배우들과 향후 계획을 이야기했다. 우리 영화의 키워드 중에 계획이 있지 않나. 계획들은 무엇이 있냐고 물으셔서 근황 겸 계획을 말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주로 했던 것 같다. 편안한 대화였다. 지난 해에도 문화콘텐츠 간담회가 있어서 청와대에 방문한 적이 있다.”

-기자에서 전향해 영화마케팅실을 거쳐 제작사 대표가 된 이력이다. 긴 시간 동안 영화에 발을 담그고 살았는데 여성으로서 고충을 느낀 적은 없나.

“나의 의견이 평균치이거나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변 여성들이 겪는 사회생활보다 이 업계가 오히려 좀 더 공정하다고 느낀다.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의견이 중요하다. 실제로 여성 제작자도 많은 편이지 않나. 다만 육아와 양립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다. 지난 20년을 돌이키면 자녀를 20살까지 키운 게 참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려진 시간’(2016) 이후 메인 제작사로 나선 두 번째 작품이다. 신흥 제작자로서 봉준호 감독과 협업하기 힘들지 않았나.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어려운 게 없었다. 중간 조율자인 내가 특별히 관여할 부분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일단 함께 작업하는 이들이 봉 감독님을 워낙 좋아한다. 단지 어떤 이름을 올린다의 의미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와의 작업을 즐긴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편안한 조건으로 시작한데다 감독님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선을 넘지도,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제작자 입장에서 조율이 어려운 게 없다. 많은 분들이 ‘봉준호니까. 봉준호는 하고 싶은 대로 다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자기 검열이 굉장히 잘 돼 있는 사람이다. 그를 만난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기생충’으로 벌어들인 매출이 어마어마하다. 제작진 및 배우들의 수익이 엄청날 거라고 예상하는데 수익 배분은 어떻게 되나.

“매출은 늘었지만 사실상 그 숫자는 우리에겐 허상이다. 계약에 따라 내부적인 배분율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힐 수는 없는 사항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금액이 우리 수익이 아니다. 매출의 절반은 각 나라의 극장에 돌아간다. 그리고 경비 등 비용을 제외시킨 뒤 나머지 금액 중 이 영화를 산 해외 배급사들이 가져가는 돈이 있고 그 나머지를 우리가 계산해 나눈다.”

-‘포스트 봉준호’로 불릴 신인 감독들도 충무로에 많이 포진해 있다. 이들과 영화 작업을 할 계획이 있나.

“봉준호 감독이 말한 것처럼 독립영화와 메이저 영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남편(정지우 감독)도 ‘생강’(1996)이라는 단편영화로 주목 받아서 충무로에 발을 들였다. 봉준호 감독도 ‘플란다스의 개’(2000)로 주목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고유한 개성과 특이한 아이템을 보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다시 감독들과 과거와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제작자로서 수익성을 고민 안 할 수는 없다. 감독의 자기 세계가 관객과 산업 속에서 서로 행복한 공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기생충’이 향후 필모그래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나.

“평생 ‘기생충’ 제작자로 남을 것 같다. 이게 어딘가. 정말 자랑스러운 타이틀이고 영광이다. 이걸 다른 작품과 비교하는 게 맥락이 없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20년간 쌓아 올린 게 집적된 결과다. 내 삶의 빅 이벤트다. 사실 봉 감독과 작품을 할 수 있도록 초기 연결점이 된 건 바른손이앤에이 문양권 회장이다. ‘마더’ 제작자였고 그 인연으로 봉 감독과 다시 작품을 하게 됐다. ‘기생충’은 인복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불화도 전혀 없었고 여전히 카카오톡 대화방이 활성화돼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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