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평창 올림픽 플라자.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페이스북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한국은 지난해 광주시가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성공 개최하면서 5대 메가 스포츠 이벤트(동ㆍ하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수영선수권, 세계육상선수권)를 모두 개최한 4번째 나라가 됐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 체육은 보다 밝은 앞날을 꿈꾸고 있다.

한국의 국제 스포츠 이벤트 개최 도전사는 파란만장했다. 서울시는 지난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고(故)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서울(Seoul)”이라고 발표한 모습은 한국 체육계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은 오스트리아 멜버른, 일본 나고야, 그리스 아테네 등과 겨뤄 승리했다.

멜버른과 아테네는 일찍 포기했지만, 나고야는 끝까지 서울을 물고 늘어졌다. 막판까지 서울은 나고야에 근소하게 뒤진 분위기였다. 체육계, 정, 재계 인사들로 꾸려진 한국의 올림픽 유치 대표단은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바덴바덴 10일 작전'을 통해 마침내 한국 스포츠 외교 역사상 가장 큰 성과를 일궈냈다. 서울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 투표에서 나고야에 52-27, 압승을 거둔 것이다.

한국은 2002년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월드컵 유치전에서도 일본과 맞붙었다. 한국은 일본(1989년 11월)보다 약 4년이나 늦은 1993년 10월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 들었다. 그 때도 분위기는 일본이 우세했다. 일찌감치 월드컵 유치에 공을 들인 일본을 따라가기엔 힘이 모자라 보였다. 1996년 7월 취리히 FIFA 집행위원회 직전까지 일본의 단독개최는 기정사실로 보였다.

그러나 집행위는 양국의 공동개최를 만장일치로 선언했다. 미주 및 유럽 대륙이 아닌 곳에서 열린 첫 월드컵이자 첫 공동 개최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개최지의 이점을 안고 4강 신화를 이뤄내며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은 그 외에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국제 스포츠 대회들을 개최하면서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갔다. 한국 체육 역사에서 2007년도 빼놓을 수 없는 한 해다. 그 해 3월 대구시는 케냐 뭄바사에서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로 선정됐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국내 최초로 열리는 세계 규모의 육상대회였다. 4월에는 쿠웨이트에서 열린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지 선정에서 인천시가 좋은 소식을 전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은 한국에서 3번째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었다.

동계올림픽 개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펼쳐진 IOC 총회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3표차로 밀려 고배를 마셨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도 러시아 소치에 졌다. 하지만 도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은 3수를 결정했고 결국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손에 넣었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광주시 개최는 2013년 7월 확정됐다. 당시 개최지 선정은 집행위원들의 투표가 아닌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 최첨단 IT 기술을 활용한 차별화된 유치 전략, 치밀한 준비, 정부 지원, 광주 시민들의 유치 열기 등이 조화를 이룬 값진 결과였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월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0년 훈련개시식에서 한국 체육의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미래를 낙관했다. 그는 “지난 100년 동안 한국 체육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 동안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은 최고의 기량으로 대한민국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다. 정부는 앞으로도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체육계를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박양우 장관은 "한국이 2024년 동계유스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했다.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 개최도 이뤄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종민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