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두 말하면 입 아프다. 배우 전도연은 매 작품마다 관록 있는 연기로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칸국제영화제 한국배우 최초 여우주연상 수상,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위촉 등 전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전도연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변화와 도전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크다”고 했다. 그런 그의 갈망은 늘 연기를 통해 드러난다. 최근 개봉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인간들’에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하고 싶어하는 연희 역을 맡아 반전 있는 캐릭터를 소화했다. 러닝타임 50분만에 첫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극을 흔드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극 중 연기한 연희는 영화 중반부터 등장한다. 어떻게 연기하고자 했나.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등장부터 인물들의 밸런스를 봤을 때 한 발자국 물러서도 연희겠구나 싶었다. 재미있었다. 그녀에 대한 숨겨진 스토리가 없으니 더 편하고 홀가분했다. 내가 만들지 않아도 이미 연희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편하기도 했다. 워낙 강렬한 캐릭터라 모든 걸 비우고 편하게 연기를 하자는 생각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가장 먼저 출연을 결정했다. 워낙 등장 캐릭터들이 많아 함께 만들어간 느낌이 클 것 같은데.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캐스팅이 다 잘 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출연 결정은 했지만,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구도가 너무 재미있었다. 시간상의 편차도 있었고, 여러 가지 뻔하지 않은 요소들이 있었다.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뻔하지 않게 풀어놓은 게 흥미로웠다. 또 모든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런 요소들에 매력을 느끼는 배우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정우성과 첫 호흡을 맞췄다. 오래된 연인 관계를 연기했는데.

“정말 쑥스러웠다. 영화 속에서 연희와 태영(정우성)의 전사가 나오지 않지만, 이미 익숙한 연인이었다. 첫 촬영부터 익숙하고 편안한 모습이어야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생각한 태영과 정우성이 구현한 태영이 달랐다. 당황스러웠다. 저렇게까지 내려놔도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놀라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는데, 그런 태영을 지켜보는 게 점점 재밌었다. 실제로 정우성 안에 태영 같은 모습이 있다. 나도 그렇고 사람들이 정우성에 대해 잘생긴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지 않나. 그런데 이번 촬영을 하면서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느꼈고 궁금해졌다.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촬영이 끝나서 아쉬웠고 다음 작품도 하고 싶다고 했다. 정우성이 연출을 준비하고 있어서 나는 왜 캐스팅 안 하냐고 했더니, 할 역할이 없다고 하더라. 다음에 제대로 하자고 하는데, 지켜봐야겠다. (웃음)”

-대부분 무거운 소재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돈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 (웃음) 내가 그런 무거운 연기를 잘한다고 다들 생각하는 것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런 것에 대한 나도 모르는 피로감이 있었던 것 같다. 피해도 다시 돌아오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피할 수도 있고 ‘이건 내 거다’ 싶으면 할 것이다.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다. ‘지푸라기’를 선택할 때 ‘나도 이런 작품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앞서 한국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에 이번 ‘기생충’ 수상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은데.

“기사로 접하고 너무 놀랐다.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문이 하나 열린 기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와 감독들이 기대와 꿈, 희망 같은 것들이 생겼다. 봉준호 감독이 예전에 나하고 작품을 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자주는 아닌데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옥자’ 할 때도 만나자고 해서 내가 출연하려나 보다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웃음) 주인공이었던 안서현과 내가 영화 ‘하녀’를 같이 했었다. 그 친구에 대한 얘기를 한참 해줬다. 아무 목적 없이, 사심 없이 만났다. 사실 나는 사심이 있었지만. (웃음) 언젠가는 봉준호 감독과 작품을 해보고 싶다.”

-연출에 대한 생각은 없나.

“없다. 입버릇처럼 내가 하면 잘할 것 같다고 말하긴 하지만, 진짜 없다. 처음 작업할 때 지금보다 훨씬 더 권위적인 분위기였다. 또 신인이라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때 감독이라는 직업을 굉장히 어렵게 접했다. 그래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 작품 ‘역시 전도연’이라는 호평이 쏟아진다. 이런 찬사 어떤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제는 칭찬이 칭찬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 칭찬들이 배우로선 좋은 거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임무를 받는데, 그것에 대한 칭찬이니 좋을 수밖에 없다. 다만 대중들이 거리감을 느끼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해외 영화제에 출품된다고 했을 때, ‘영화제와 전도연, 관객들이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까’ 라고 우려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관객들이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좋겠고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양지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