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격 진종오(왼쪽부터)-레슬링 김현우-여자배구 박정아-기계체조 이은주. /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김지섭]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에는 인간사와 같은 희로애락의 파노라마가 담겨 있다. TV를 통해 태극 전사들의 활약상을 지켜 본 국민은 감동과 웃음, 때로는 격정과 눈물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동안 교차했다.

희(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사격 황제’ 진종오(37·KT)와 펜싱 신예 박상영(21ㆍ한국체대)이 미국 메이저리그 전설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실천으로 옮겼다. 진종오는 50m 권총 결선에서 소름 돋는 역전극으로 세계 사격 최초의 올림픽 개인 종목 3연패를 이뤘다. 9번째 격발에 6.6점을 쏴 8명 중 7위로 추락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지만 이후 순위를 한 계단씩 끌어올리는 맹추격전을 펼친 끝에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1위로 올라섰다. 마지막 발은 9.3점을 쏴 대회신기록 193.7점을 찍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 박상영도 역대 올림픽 주요 역전 사례에 남을만한 명승부를 펼쳤다. 박상영은 에페 결승에서 42세의 베테랑 게저 임레(헝가리)를 만나 10-14로 뒤지는 절대 열세에 놓였다. 한 포인트만 더 내주면 은메달이 확정되는 위기였으나 이때부터 박상영은 내리 5포인트를 따내는 믿기 어려운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노(怒), 해도 너무한 편파판정

레슬링에서 나온 편파 판정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을 꿈꿨던 레슬링 간판 김현우(28ㆍ삼성생명)는 그레코로만형 75kg급 16강전에서 러시아 로만 블라소프에 판정 논란 속에 5-7로 패했다. 4점짜리 기술이 2점으로 둔갑하면서 금메달이 좌절됐다. 광복절에 금메달과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던 꿈이 좌절된 김현우는 패자부활전에서 팔이 빠지는 부상 속에도 투혼을 발휘해 동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앞에 펼쳐 두고 큰 절을 하며 눈물을 적셨다. 친구의 한을 풀기 위해 뒤 이어 그레코로만형 66㎏급에 나선 류한수(28ㆍ삼성생명)도 석연찮은 심판 판정 탓에 노메달로 고개를 숙였다. 러시아 선수를 향한 심판진의 편파판정이 이번 대회에 나오자 한국 선수단은 물론 전직 레슬링 선수도 분노했다.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벤 아스크렌(미국)은 트위터를 통해 “리우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은 총체적인 난국”이라며 “심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哀), 선수를 울린 마녀사냥

경기에서 진 것도 억울하고 아쉬운데 지나친 마녀사냥은 선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여자 배구 대표팀 박정아(23ㆍIBK기업은행)는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패한 뒤 SNS를 닫았다. 서브 리시브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박정아의 인스타그램에 팬들은 경기 내용을 질책하는 글을 쏟아냈다. 결국 박정아는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계정을 비공개로 바꿨다. 축구 대표팀 손흥민(24)도 온두라스와 8강전에서 부진하자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손흥민이 팬들의 표적이 되자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이 8강전을 마친 뒤 온종일 울었는데 내 가슴도 미어졌다”며 “손흥민의 헌신이 없었다면 팀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사이클 국가대표 박상훈(23ㆍ서울시청)은 낙차 사고로 옴니엄 경기를 끝마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마지막 종목인 포인트레이스에서 52번째 바퀴를 돌다가 낙차 사고를 당해 박상훈은 일어나지 못했고,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돌발 사고로 메달 꿈을 접어야 했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락(樂), 승부보다 경기를 즐겼다

여자 기계체조 이은주(17ㆍ강원체고)는 북한의 홍은정(27)과 찍은 ‘셀카’로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개인종합 53위로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결과를 떠나 축제를 즐겼고, 함께 출전한 홍은정과 역사적인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셀카를 찍기 위해 앞으로 뻗은 이은주의 왼손을 두고 “위대한 몸짓”이라고 표현했다. 이 소식을 전한 야후 스포츠는 “모두를 하나로 묶는 올림픽의 힘은 여전하다”며 “이은주와 홍은정이 함께 사진 찍은 장면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했다. 한국 복싱의 유일한 올림픽 출전자 함상명(21ㆍ용인대)은 아름다운 패자로 기억됐다. 그는 복싱 밴텀급(56㎏) 16강전에서 장자웨이(중국)에게 0-3 심판 전원 일치 판정패했지만 먼저 다가가 자신을 꺾은 상대의 손을 먼저 잡았다. 그리고 그 손을 높이 들어 관중에게 승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진심으로 승리를 축하해줬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경기를 즐긴 자만이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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