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20 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124년 올림픽 역사에서 외부적 변수로 올림픽 개최가 어려울 경우 지금까지 '취소' 또는 '강행' 카드 외의 다른 선택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올림픽 역사가 2020 도쿄올림픽 연기로 바뀌었다. 표면적으론 24일(이하 한국 시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화상 회담에서 1년 연기가 결정됐다. 아베 총리가 1년 연기안을 제안하고 IOC가 적극 수용하면서 밑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그간 일본 정부와 IOC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고 전 세계적으로 올림픽 연기 여론이 들끓어도 "일본은 안전하다"며 올림픽 강행을 주장해 왔다. 그런 일본이 경기장 및 선수촌 유지·관리비와 대회 재개최 경비 등을 더해 모두 6400억 엔(약 7조4000억 원)의 천문학적 손실과 입장권 환불, 숙박 예약 취소 등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1년 연기로 급선회한 대목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베는 왜 갑작스럽게 올림픽 1년 연기 카드를 꺼냈을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올림픽 연기를 장기집권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연합뉴스

◆ 4선 장기집권 지렛대로 쓰려는 아베

'부흥'과 '재건'을 도쿄올림픽 슬로건으로 내건 아베 정권에 있어 올림픽 연기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를 발판 삼아 아베 총리가 내년 9월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연장해 4선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 교수는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아베 총리가 마지막 올림픽까지 마무리해야 하니 한 번 더 (총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일본 국민에게 어필해 4선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일본 국민은 우리 생각보다 아베 정권에 비판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베 정부가 올림픽 정상 개최보다 정치적 타격을 받겠지만, 그래도 취소보다는 덜 할 것"이라며 "아베 총리가 집권 연장 후 집권 기간 내내 주장하고 있는 개헌 논의에 불을 지필 것"으로 내다봤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 역시 이날 '김지윤의 이브닝쇼'에 출연해 같은 주장을 했다. 이 교수는 "아베 정부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올림픽 취소가 아닌 사상 첫 연기를 이끌었다'는 식으로 홍보 전략을 펼칠 수 있다"면서 "2012년부터 약 9년간 아베 정권에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일본 국민들이 지지했던 이유는 올림픽 개최 후 경제 부흥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현재 아베 정권이 계획하는 것 중 하나가 7월 올림픽 기간 중 현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하는 것"이라며 "올림픽 특수를 기대하고 지난해 10월 인상했던 소비세 10%를 총선 과정에서 5% 인하 내지는 0%로 내리는 공약을 내걸 수 있다. 일본 국민에게 나름대로 올림픽 연기에 대한 기대심리와 함께 아베 정권의 경제 부흥에 대한 희망을 심어 선거 승리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베가 총선 승리로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실패한 여러 코로나19 대책과 올림픽 관련 준비를 오히려 정권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서 "아베 총리를 위협할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측근들은 일관되게 아베 총리의 4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올림픽 연기를 장기집권의 포석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 일본의 스포츠 외교전 참패 결과물?

초유의 올림픽 1년 연기가 도쿄올림픽 개최국 일본과 최강국 미국 사이의 파워게임에서 일본이 패한 결과물이라는 분석도 있다. 애초 일본과 IOC는 나란히 '정상 개최'를 주장했다. 연기나 취소는 고려 하지 않았다. 특히 1년 연기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2021년 6월), 세계수영선수권대회(2021년 7월),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21년 8월)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 행사들과 일정이 겹쳐 ‘불가’ 의견을 내세웠다.
 
1년 연기를 처음 주장한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텅 빈 경기장에서 대회를 치르는 것보다 1년 연기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관중 없는 올림픽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포츠 강국이자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IOC가 급선회했다. 여기에 올림픽 TV 중계권사인 미국 NBC 방송사의 입김이 작용했다. NBC는 IOC의 최대 고객이다. 2011년 NBC는 2020년까지 중계권료 43억8000만 달러(5조4500억 원)를 IOC에 안겼다. 2014년에는 77억5000만 달러(9조6500억 원)를 추가해 2032년까지로 계약을 연장했다. IOC가 밝힌 2013~2016년 올림픽 관련 전체 수익은 57억 달러(7조1000억 원)다. 이 중 73%를 중계권료로 벌었다.
 
NBC는 IOC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손'이다. 당연히 IOC는 NBC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유럽 등으로 확산할 당시 IOC와 일본은 10월 이후 올림픽 개최안을 만지작거렸다. 올 가을 올림픽이 열린다면 NBC의 손해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가을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미국 프로농구(NBA),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등 프로스포츠가 본격적인 우승 싸움을 펼칠 시기다. 올림픽이 열린다면 시청률이 분산돼 TV 광고 단가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NBC 입장에선 가을보단 1년 연기가 더 이득이다.
 
만약 미국이 불참한다면 올림픽 흥행에 치명타다. 미국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2016년 리우 대회까지 여섯 번의 하계올림픽에서 다섯 번이나 종합 1위를 차지할 만큼 스포츠 강국이며 다수의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없는 올림픽은 당연히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IOC가 개최국 일본이 아닌 미국 편으로 방향을 튼 건 이처럼 경제적 이유와 정치적 영향력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사이 스포츠 외교 대전에서 승패가 올림픽 연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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