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2020 도쿄올림픽 금지 반입 물품에서 전범기를 제외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정치적 의도는 없으며 일본 내에서 널리 쓰이는 깃발일 뿐이다."

2020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전범기(욱일기)의 도쿄올림픽 사용을 사실상 허가했다. 올림픽 경기장 반입 금지 물품에서 전범기를 제외한 것. 전범기를 흔드는 것 만으로도 일본이 저지른 인권유린과 탄압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한국인은 일본의 일방통행에 분개하고 있지만 일본은 요지부동이다. 일본은 왜 전범기 사용에 집착하는걸까. 

◆일본이 올림픽에 전범기 사용을 허용한 이유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11월8일 한글을 포함해 영어 등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전범기 관련 보도자료를 냈다. 일본 외무성은 "정치적 주장이나 국수주의의 상징이라는 지적은 전혀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풍어기나 출산, 명절 등 일상생활 속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는 깃발"이라고 강조했다. 전범기가 일본 고유의 문화라는 주장이다. 해당 자료에는 전범기가 과거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이나 태평양전쟁 등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일각에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경경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욱일기 사용을 허용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 내 커지는 국수주의 세력을 끌어 안고, 민족주의적 표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 깔렸다는 관측이다. 

전범기는 일본 공식 국기인 흰색 바탕에 가운데 붉은 원이 있는 일장기와 달리 붉은 원 주위에 16갈래로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군기로 해군과 육군이 주로 사용했다. 1870년 5월15일 전쟁 깃발로 처음 채택된 이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할 때까지 사용됐다. 그후 1954년 다시 채택됐고, 현재는 일본 해상 자위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게 전범기란 "증오의 깃발"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35년간 일본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로 수 많은 인적·물적 수탈을 경험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식 SNS 채널을 통해 "욱일기는 증오의 깃발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전범기 사용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는 꾸준히 전범기 사용에 반발해 왔다. 

1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만나 "전범기 문제와 방사능 오염 등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고 전하면서 해결을 요청했다. 그러나 바흐 위원장은 "IOC를 신뢰하고 맡겨달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전범기 사용은 명백한 올림픽 헌장 위반이다. IOC 헌장 50조에는 '올림픽과 관련한 시설이나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스포츠의 순수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중국은 왜 반발하지 않을까

일본 정부는 전범기 관련 논란에 대해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고 견해를 밝혀오고 있다. 한국과 같이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봤던 중국이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난징에서 수십만 명의 중국인이 일본군에 의해 무차별하게 학살 당했다. 중국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난징대학살 당시 30만 명 이상이 살해 당했고, 20만 명 이상의 여성이 강간 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막심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전범기에 왜 반발하지 않을까. 존스 홉킨스 대학 난징 캠퍼스의 데이비드 아레스 교수는 최근 BBC와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일본과 관계 증진을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레스 교수는 "중국은 전범기와 관련해 큰 문제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중국 안에서도 전범기 관련 반대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은 한국을 제외한 주변 국가의 침묵과 자국 내 커지는 극단적 국수주의 세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범기를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무대까지 끌어 들이고 있다. 

박대웅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