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풍.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프로농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지난 1997년 출범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시즌을 도중에 종료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은퇴도 잇따라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한국스포츠경제는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선수들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양동근의 농구 인생을 돌아본 데 이어 전태풍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전)태풍이형, 은퇴하고 (하)승진이형과 같이 방송해 주세요.” 

전 프로농구 선수 전태풍(38)의 기사에 한 농구팬이 남긴 댓글이다. 이 댓글을 소개하자 전태풍은 “무조건 할 거야. (하)승진이랑 같이 하면 장난 아닐 거야”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KBL 최고 테크니션 전태풍이 정든 코트를 떠난다. 서울 SK 유니폼을 입고 2019-2020시즌을 뛴 그는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 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인 그는 지난 2009년 토니 애킨스라는 이름으로 혼혈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주 KCC의 지명을 받고 KBL에 진출했다. 이후 고양 오리온, 부산 KT, SK에서 뛰며 그의 이름 ‘태풍’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첫 시즌부터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든 화려한 개인기와 정확한 외곽포, 돌파 능력 등을 두루 뽐내며 단숨에 리그 정상급 가드로 활약했다. 그는 실력뿐만 아니라 거침없는 입담과 친절한 팬 서비스로 많은 농구팬의 사랑을 받았다.

전태풍은 2019-2020시즌을 앞두고 SK 유니폼을 입으며 은퇴를 예고했다. 지난 2월 29일 인천 전자랜드와 경기에 출장한 그는 종료 직전 약 8m 장거리 3점포를 터뜨렸다. 전태풍의 농구인생 마지막 슛이자 득점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전태풍의 농구 인생도 조금 일찍 막을 내렸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목표였던 우승 반지도 손에 넣지 못하고 ‘강제 은퇴’를 맞았다. 전태풍은 지난달 30일 본지와 통화에서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냥 ‘여기까지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재미있게 살면 된다”고 ‘쿨’하게 말했다.

은퇴를 미룰 생각은 없었냐고 묻자 “감독님, 코치님, 동료들이 1년 더 하라고 했다. 다들 눈치가 없다”고 농담을 던진 그는 “이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제가 나가고 그 자리에 젊은 선수들이 들어오는 게 팀에도 좋다”고 말했다.

KCC 시절 하승진(왼쪽)과 전태풍(가운데). /OSEN

전태풍은 KCC 시절인 2010-2011시즌에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그는 이때를 선수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으로 꼽았다. “처음 KCC에서 뛸 때는 정말 편하게 농구했다. 우승했을 때 그 느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프로 생활 중 가장 행복한 때였다”라고 돌아봤다.

유니폼을 벗은 전태풍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아이들과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끼고 있다”면서 “동아리 농구가 하고 싶은데 코로나19 때문에 밖에 못 나가고 있다. 바이러스가 없어지면 동아리 농구에서 예전에 즐겼던 화려한 기술들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했다.

전태풍은 제2의 인생을 ‘방송인’으로 살기로 했다. 지난해 유튜버로 전향한 단짝 하승진(35)의 조언에 용기를 얻었다. 이미 여러 연예 기획사와 만났다. 재미 있는 방송을 위해서라면 망가지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받고 현명하게 결정할 생각이다. 연예 기획사들과 미팅은 끝났고, 이번 주말까지 결정할 생각이다. 인기 유튜버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많이 장난치고 재미있게 방송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농구를 사랑하는 농구인으로서 쓴소리도 남겼다. 대학까지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한 전태풍은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한국 농구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한국 선수들은 24시간 눈치만 본다. 그게 어떻게 프로 선수라고 할 수 있나. ‘꼰대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농구인들이 새로운 농구 트렌드와 지도법을 공부해야 한다. 한국농구가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농구인들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한다. 한국 농구인들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농구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선수들이 코트에서 마음껏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NBA(미국 프로농구) 정도는 아니어도 한국 선수들도 힘, 기술, 수비 모두 좋다. 하지만 코트 안에서 로봇 같다. NBA처럼 선수들이 화려한 개인기도 보여줘야 팬들이 더 즐거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전태풍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큰 사랑을 보내준 국내 농구팬들에게 감사와 애정을 표했다. “KBL에서 뛰면서 너무 행복했다. 많이 배웠다. 농구 선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성장했다. 사실 2~3년 전부터 은퇴 생각이 있었지만, 팬들에게 태풍처럼 뛰는 걸 다시 보여 주고 싶어서 미뤘다. 이제는 목표가 너무 멀어져서 그만하자고 생각했다. 10년 동안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너무 고맙다. 항상 열심히 뛰고, 팬을 먼저 생각했던 선수, 농구를 사랑하고 유쾌했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이 아니다. 두 번째 인생이 있다. 앞으로 팬들과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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