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베트남 메체의 박항서 감독 연봉삭감 압박
베트남 내 혐한 감정이 불똥으로 튀어
일부 주장을 전체로 봐선 안된다는 시각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이상빈 기자] 베트남 축구 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61) 감독이 때아닌 현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베트남에 번진 혐한(嫌韓) 기류가 난데없이 한국인 박 감독에게 향한 것이다. 한 국가를 향한 분노가 평범한 개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문재인 정부 신(新)남방정책 핵심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베트남 매체 ‘베트남넷’은 2일(이하 한국 시각) ‘박항서 감독 연봉 삭감, 왜 할 수 없는가’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내보냈다. 박 감독이 코로나19 방역과 치료를 위해 베트남 정부에 5000달러(약 610만 원)를 기부한 사실을 언급하며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이 부와 명예를 거머쥔 베트남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코로나19로 전 세계 축구팀이 긴축 재정에 돌입해 박 감독도 연봉을 자진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다른 매체도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국가대표팀 훈련 연기로 근무 일수가 줄자 연봉 50%를 반납해야 한다고 박 감독을 흔들었다. 또한 한국인에게 민감한 사안인 ‘일본인과 비교’로 불을 지폈다. 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는 일본인 니시노 아키라(55) 감독이 50% 연봉 삭감에 동참했다며 박 감독에게 압박을 가했다.

베트남 언론이 힘을 모아 ‘박항서 흔들기’에 나선 배경엔 혐한 감정이 자리한다. 2월 25일 대구에서 다낭으로 입국한 한국인 승객 수십 명을 베트남 정부가 사전 통보 없이 격리했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자국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명분으로 모든 입국자를 2주간 격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낡은 병원으로 옮겨진 한국인 여행객들은 격리실이 자물쇠로 잠기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울러 당국이 식사로 준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평을 국내 한 매체가 보도하자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달았다. 자기들의 선심(善心)을 무시했다며 베트남 누리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누리꾼이 만들어 온라인에 유포한 혐한 게시물. ‘South Korea’를 ‘South Korona’로,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코로나바이러스 모양으로 바꿔 한국인들의 공분을 샀다. /페이스북 캡처

2월 29일엔 베트남 정부가 사전 통보도 하지 않고 인천국제공항에서 하노이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의 착륙을 불허해 결국 이륙 40분 만에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관한 한국인들의 분노를 베트남 언론이 기사화하면서 혐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한국이 보기엔 외교적 결례지만 베트남에선 자국민을 전염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강력 조치다. 일부 몰상식한 베트남 누리꾼은 한국의 감염 확산세가 커지던 2월 말 ‘South Korea’를 ‘South Korona’로 부르고, 태극기의 태극문양을 코로나바이러스 모양으로 바꾼 게시물을 만들어 온라인에 유포했다. 혐한 불똥은 곧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박 감독에게 튀었다. 일부 매체가 박 감독을 희생양 삼아 마녀사냥에 나섰다.

언론의 흔들기에도 베트남축구협회는 박 감독 연봉 문제와 관련해 아직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일부 매체 보도를 베트남 전체 의견으로 봐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작은 사안을 크게 부풀려 갈등을 유발한 한국-베트남 양국 언론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꼬집는 반응도 존재한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를 무대로 한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양국 사이 경제, 무역 등 여러 방면에서 원조와 협조가 이뤄진다. 한국 기업도 앞다퉈 진출한 곳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베트남 수출 약 25%를 차지했다. 2018년엔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이 베트남 국내총생산(GDP) 31.5%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해진 이맘때 서로를 향한 오해와 문화 차이에서 비롯한 갈등을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를 무대로 한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사진은 호치민시에 있는 쩐흥다오 동상. /이상빈 기자
베트남은 인도차이나반도를 무대로 한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사진은 호치민시 풍경. /이상빈 기자

이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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