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1994년 역사 시작한 한국경륜
1990년대 경륜 경주 모습. /경륜경정총괄본부

[한국스포츠경제=이상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륜이 중단 장기화에 접어들었다. 이 가운데 1994년부터 벨로드롬을 지켜보고 분석한 박창현 최강경륜 발행인이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과거 스타들을 조명한 ‘경륜에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이 경륜팬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1994년 시작한 경륜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자전거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피드와 역전의 역전을 거듭하는 경기 내용이 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경륜의 이런 신선함과 호쾌함을 끌어낸 일등 공신으로 원년 멤버 은종진(2007년 은퇴)과 허은회가 꼽힌다. 아마추어 시절 빛을 보지 못한 은종진은 부상과 개인사가 겹쳐 많은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투지와 두뇌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특히 입상에 실패하고 심지어 낙차한 경주에서도 경륜장 흥행을 이끌었다. 그만큼 경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특별했던 선수다.

경륜 1기 허은회. /경륜경정총괄본부

1기 멤버 중 가장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가진 허은회는 데뷔 전까지 실업팀 지도자로 재직한 3∼4년 실전 공백과 서른이란 적지 않은 나이 탓인지 1994년엔 은종진의 그늘에 가렸다. 이후 매일 새벽 훈련은 물론 야간 훈련까지 소화하며 전성기 기량을 빠르게 회복한 끝에 사상 최초로 대상경륜 3개 대회를 연거푸 우승했다. 장점은 당시 힘으로만 경주하는 젊은 선수들을 역이용하는 노련한 경기 운영과 특유의 순발력이다. 반 바퀴를 전후할 때 기습처럼 후위에서 선두권을 유지한 채 막판 직선 승부를 본 2단 젖히기나 추입 전법은 예술의 경지였다. 지금도 이런 작전을 쓰는 선수는 손에 꼽힌다. 힘은 기본이고 고도의 순발력과 동물적인 순간 판단 등이 조화를 이뤘기에 가능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경륜 전성기를 이끈 인물은 ‘2기 빅 3’ 김보현, 원창용, 정성기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경륜까지 논스톱으로 직행한 이들은 젊음과 파워를 무기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바꿔놨다. 전반적인 시속도 빨라졌지만 단순한 반 바퀴 이후 승부를 한 바퀴까지 늘렸고 지역 연대 대결로까지 양상을 확대했다. 그만큼 경기가 빨라지고 전개도 변화무쌍해졌다. 팬들은 이때부터 초반 줄 서기를 예측하는 등 경륜의 묘미인 ‘추리하는 즐거움’에 빠졌다.

경륜 2기 김보현. /경륜경정총괄본부

세 선수는 스타일도 제각각이다. 맏형 격인 정성기가 은종진, 허은회와 유사한 추입 젖히기형이라면, 원창용은 호쾌한 선행이 주 무기였다. 김보현은 상대나 상황에 따라 선행과 추입을 적절히 섞어 진정한 자유형 경주를 펼쳤다. 선행 전문 원창용은 리더십도 남달라 김보현과 함께 지역 대표 선수로 부상하며 창원, 경남을 전국 최강팀 반열에 올려놨다. 현재 정성기만 남고 원창용과 김보현은 각각 2001년, 2016년에 은퇴했다.

‘2기 빅 3’에 이어 등장한 강자는 엄인영과 주광일이다. 특히 엄인영은 1999년 사상 초유의 연대율 100%를 기록하며 주광일과 연대를 이뤄 그해 그랑프리까지 거머쥐었다. 엄인영과 주광일은 ‘빅 3’와는 다른 스타일을 선보였다. 엄인영은 당시 3.50 이상 고 기어를 사용했는데도 순간 파워나 스타트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주광일은 데뷔 초엔 엄인영과 비교해 화려함이 다소 떨어졌으나 어느 위치에 나서도 막판까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던 게 최대 장점이다.

이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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