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새 앨범 '방랑자'로 돌아왔다. 그간 한 작곡가의 작품만 주로 녹음했던 그는 이번 앨범에서 여러 작곡가들의 노래를 한 데 엮어 들려준다. 슈베르트부터 베르크, 리스트까지 매우 정교한 레퍼토리를 가진 이번 앨범에서는 연주가 조성진의 섬세함이 듬뿍 느껴진다. 세계를 곳곳을 누비며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방랑자'란 어떤 의미일까. 또 코로나19로 국경을 넘기 어렵게 된 지금, 그와 음악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코로나19로 세계 공연계가 얼어붙었다. 지난 달 세계 피아노의 날을 맞아 진행한 온라인 스트리밍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5년 여 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쉬고 있다. 마티아스 괴르게 같은 경우에는 커리어가 30년이 넘은 사람인데 3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얼마나 이 상황이 어색하겠나. 그래서 뭔가 해야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음악가들 가운데 워커홀릭이 많다. 마침 베를린에 살고 있어서 좋은 기회를 잡게 됐다. 관객 없이 라이브를 하는 게 처음이라 초반에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콘서트를 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느꼈다. 도이치그라모폰 세계 피아노의 날 라이브 스트리밍에도 참여했다. 집에서 피아노 치는 걸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다. 피아노를 조율한 지 오래돼서 피아노 소리가 조금 아쉽더라."

-이런 때일수록 음악의 역할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다른 때보다 요즘 음악을 더 많이 듣는다. 영화도 많이 본다. 집에 하루 종일 있다 보니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여가가 되는 것 아니겠나. 그러면서 느낀 게 '음악이 우리 삶에 필요한 존재구나'라는 것이다. 꼭 클래식뿐 아니다.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즐기려고 할 때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음악이 꼭 필요하다. 영화에도 음악이 없으면 조금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사태로 음악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됐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느꼈다. 레스토랑 가서 평범하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많이 느꼈다."

-신보 '방랑자'에 여러 작곡가들의 곡을 실었는데.

"지금까지는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이렇게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했다. 사실 레코딩 할 때는 한 작곡가만 레코딩하는 게 더 편하고 쉬운 점이 많다. 그래도 한 번은 리사이틀 프로그램 같이 여러 작곡가들을 엮어서 녹음해 보고 싶었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콘셉트에 맞춰서 레퍼토리 프로그램을 짜는 걸 참 잘하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도전했다. 고심 끝에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은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다른 곡들을 정했다."

-'방랑자'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다면.

"'방랑자'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슈베르트 방랑자 2악장 때문이다. 그게 방랑자 가곡의 주제를 따와서 '방랑자'가 됐다. 방랑이라는 게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던 것 같다. 특히 슈베르트한테는. 물론 리스트도 낭만 시대의 작곡가였고 그 사람도 여기저기서 살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방랑까지는 아니라도 여행을 많이 하면서 살지 않나. 그런 점들에서 이 시대 뮤지션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 '방랑자'라는 제목을 붙이게 됐다."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서 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곡의 가장 어려운 점은 테크닉인데, 그보다 테크닉이 어렵다는 걸 감추는 게 제일 어렵다.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어려운 곡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아름답고 드라마틱하고 서정적이라고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들 가운데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라는 건 사실이다. 지난 2018년 말부터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편해지더라. 또 이 곡은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곡이고 악장마다 캐릭터도 달라 그런 것도 잘 표현하려고 했다."

-녹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혹은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항상 녹음이 연주보다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으로 남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그런 면에서) 아무래도 리스트 소나타가 가장 어려웠던 곡인 것 같다. 긴 곡이고 스케일도 크고 피아노 레퍼토리에서 가장 어려운 곡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리스트 같은 경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쳤고, 처음 무대에 오른 게 2011년이었다. 그 때부터 3년에 한 번 정도씩은 무대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음악적인 관점과 시각도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 살다가 2012년에 파리로 유학을 갔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한국에 가면 거기가 집 같고, 다시 파리로 오면 또 거기가 집 같았다. 그런데 콩쿠르 하고 베를린으로 이사를 오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 됐다. 내가 1년에 베를린에 4달 정도 있더라. 그렇게 많이 있는 건 아니다.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는 게 내 직업이니까. 그런데도 베를린에 돌아오면 집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이 집인 거구나'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원래 외동이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혼자 있는 걸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진 않는다. 오히려 연주를 하려면 지휘자나 다른 뮤지션 등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웃음)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좋지 않을까. 나 같은 경우에는 피아노 음악을 오랜만에 많이 듣고 있다. 특정한 곡을 많이 듣지는 않고 연주자 위주로 듣는다. 에밀 길렐스도 있고 브론프만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작년 말에 처음 만났는데, 그 분 연주도 많이 듣는다. 그 분이 뉴욕필과 베토벤 4번을 연주했는데 그 때 그걸 너무 좋게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 마디 해 준다면.

"항상 많은 관심 주셔서 감사하다. 7월 한국 공연이 성사되기를 바라고 있다.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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