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암살’과 같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경성행 열차가 나오니 ‘설국열차’, ‘부산행’이 떠오른다. 경쾌한 재즈선율에 독립군들이 하나씩 체포되는 장면이 ‘킹스맨’과 묘하게 겹친다. 하지만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된 일제강점기는 처음이다. 깔끔하고 멋진 독립군들이 나와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한다.

오는 9월 7일 개봉하는 영화 ‘밀정’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일본경찰 이정출(송강호)과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가 목표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펼치는 내용이다.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의 4번째 호흡, ‘부산행’으로 천만 배우가 된 공유,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의 첫 한국영화 투자 작품, 베니스·토론토 국제영화제 초청, 초특급 카메오 이병헌과 박희순 등 여러 관전 포인트들로 관객들의 기대감을 자아내고 있다.

영화는 황옥 경부 폭탄 투척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지금까지도 일본군 황옥이 친일파로 위장한 의열단인지, 친일파로 의열단에 숨어들어간 밀정인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영화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새로운 시각을 던진다. 다시 말하면, 밀정을 찾아내는 영화가 아니라 그 당시 현실을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른 독립군 등장 영화가 공동체의 의미나 공동의 목표에 집중했다면 김지운 감독은 독립군 개개인의 심리에 주목했다.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배에서 탈출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남아 배를 지키느냐는 국적을 불문하고 오로지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영화엔 의열단 내부에 일본군 밀정이 숨어들어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신선한 반면, 의열단의 팀워크나 끈끈한 의리 같은 감정을 받기란 쉽지 않다. 의열단장 정채산에게 충성을 다하는 김우진이나 정채산을 만나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이정출도 쉽게 이해되진 않는다. 주고받는 대사 속에 미묘한 감정들이 얽히는데 관객들이 이해하기 나름에 달렸다. 상업성이 짙은 영화는 아니라 개봉 후 대중의 평가가 궁금해진다.

“한계 없는 배우”라는 찬사를 들은 송강호는 ‘밀정’에서도 역시나 열연을 펼친다. 일본군과 의열단을 기웃거리며 선택을 망설이는 복잡한 이정출의 내면을 현실감 있게 소화했다. 특유의 코믹함을 섞어가며 극의 긴장을 쥐락펴락 한다. 김우진,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하시모토(엄태구) 등 상대 배우가 달라질 때마다 송강호표 이정출도 그에 맞는 변신을 거듭한다. 특히 하시모토와의 관계가 인상적이다. 승진을 두고 다투는 직장 라이벌의 느낌으로 다가오다, 경성행 열차에선 마치 ‘부산행’의 좀비처럼 마주치기 겁나는 존재가 된다. 송강호에 밀리지 않고 맞선 엄태구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을 전망이다.

공유 신성록 한지민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들은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의 의열단원으로 등장해 비주얼을 폭발시킨다. 김우진에 빙의된 공유는 똑똑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신성록은 분량은 짧지만 의열단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지민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총격전을 벌이는가 하면 심한 고문을 견뎌내는 모습으로 강인함을 드러낸다.

사진=영화 '밀정'

황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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