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의 144경기 체제 유지가 현장에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지금 상황에서 정규시즌 144경기를 진행하면 좋은 경기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

“현장에서는 경기 수를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류중일 LG 트윈스 감독)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캠코양재타워에서 제4차 이사회를 열고 올 시즌 개막일을 어린이날인 5월 5일로 확정했다. 일단 팀당 정규시즌 144경기 소화를 목표로 출발하고, 선수단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경기 수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KBO가 144경기 체제를 고수함에 따라 10개 구단은 올 시즌 유례없는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 KBO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경기를 치르는 만큼 시즌 중 우천 취소 때는 더블헤더(두 팀이 같은 날 연속으로 두 경기를 치르는 것) 및 월요일 경기를 진행하기로 했다. 선수층이 얇은 KBO 리그에서 무리한 연전은 선수단에 과부하를 준다. 경기력이 떨어지고 부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리그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여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KBO 이사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20일 취재진과 만난 염경엽(52) SK 와이번스 감독은 소신 발언을 쏟아냈다. KBO리그 144경기 체제 강행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역 감독으로 쉽지 않은 발언이지만, 소위 ‘총대’를 멨다. 앞서 류중일(57) LG 감독도 사견을 전제로 144경기 체제 강행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김태형(53) 두산 베어스 감독도 이날 LG와 연습경기를 앞두고 “현재 선수층으로 (5월 5일부터) 144경기를 모두 치르기엔 무리"라며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염 감독은 “팬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경기 수준이다. KBO리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기 질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144경기를 치른다면, 초반에 점수 차가 벌어지면 포기하는 경기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염 감독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와 맛집을 예로 들었다. “프로스포츠 성공의 기본요소는 경기의 질이다. EPL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경기의 질,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수준이 높으니 경기가 재미있다. 그러니 직접 구경하러 간다. 그러면서 인기가 계속 늘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양이 많은 음식점보다 맛이 있는 음식점을 선호한다. 팬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부분이 경기의 수준이다. 민심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KBO는 이날 이사회에서 포스트시즌(PS) 준플레이오프를 5전 3선승제에서 3전 2선승제로 축소하기로 했다. 염 감독은 포스트시즌 축소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PS를 줄이는 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처사”라며 “오히려 정규시즌 경기 수를 줄여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규시즌 경기 수 축소는 중계권, 광고권, 선수 연봉 등 각종 수익 혹은 지출로 직결된다. 기록과 자유계약선수(FA) 일수, 선수단 연봉 책정 문제도 얽혀 있다. KBO가 경기 수 축소를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는 이유다. 염 감독은 경기 수 축소로 인한 구단과 KBO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선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KBO는 보유하고 있는 야구발전기금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적지 않은 피해를 받는 구단과 선수를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또 KBO가 나서서 희망캠페인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KBO는 염 감독을 비롯한 현장 관계자들의 제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KBO 리그의 경기력 저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올 시즌 여파는 내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년 3월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7월에는 올림픽이 열린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해선 안 된다.

이정인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