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서로 먹이를 물어뜯듯이 하다가 (설리와 구하라가 세상을 떠나자) 슬퍼서 추모를 할 거라고 하더라. 나는 평생 연예인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 SNS를 다 끊고 닫았다."

김희철이 20일 JTBC 예능 프로그램 '77억의 사랑'에 나와서 한 말이다. 이 말을 듣고 함께 앉아 있던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은 "(악플러들이) 약간 가증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무 생각없이 욕설 따위를 내뱉다가 사건이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커지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발을 빼려는 악플러들을 보면 아마 많은 이들이 이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 날 방송의 주제는 '악플'이었다. 김희철은 최근 절친했던 동료인 설리와 구하라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김희철은 설리가 세상을 떠난 뒤 고인과 함께 지내던 반려묘인 블린이를 임시 보호했을 정도니 이들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각별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악플러들의 무차별한 공격과 그들의 태세 전환을 보며 그가 얼마나 크게 상심했을지도 이해되는 바다.

그런 김희철의 발언에서 아쉬웠던 건 두 가지 부분이다. 설리와 구하라의 사망을 언급하며 '젠더 갈등'을 소환한 것과, 첫 방송부터 프로그램의 성격에 대한 비판을 받다가 설리의 사망 이후 결국 폐지된 JTBC '악플의 밤'에 대한 언급이다. 김희철은 '77억의 사랑'에서 설리가 생전 '악플의 밤' 출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복해했다고 이야기했다.

김희철은 두 사람의 사망에 대해 이야기한 뒤 "요즘은 성별을 갈라서 싸우지 않나. 남자들은 소위 말하는 성희롱 등 모욕적인 발언을 (고인들에게) 했고, 여자들은 '여자 망신'이라면서 모욕적인 말들을 했다"면서 설리와 구하라의 사망에 '젠더 갈등'을 끌고 왔다. 위근우 기자는 두 가지 논거로 이 같은 주장이 성립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첫째는 악플이 성별과 관계 없이 동일하게 가해졌다고 하더라도 실제 기사나 연예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가시화된 공격은 남성중심적 담론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둘째는 고인이 자신의 삶 안에서 지키려 한 태도 자체가 여성의 자기결정권(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과 자매애(생리대 지원)라는 이유에서였다.

또 김희철이 이야기한 것 처럼 고인(설리)이 실제로 '악플의 밤'에 출연하며 행복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향한 무분별한 악플들을 아티스트가 직접 읽고 리액션을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 포맷이 가혹하다는 지적이 일어 프로그램이 폐지까지 된 상황에서 김희철이 해당 프로그램을 방영했던 JTBC의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악플의 밤'을 두둔하는 건 윤리적이지 못 한 일이었다는 비판도 덧붙여졌다.

김희철은 위 기자의 글을 읽고 무척 화가 났는지, 그의 계정에 찾아가 댓글을 남겼다. 김희철이 남긴 글은 "아저씨. 악플러나 범죄자가 '남자냐 여자냐' 이게 중요함? 성별을 떠나 범죄 저지르면 그냥 범죄자지"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의 말대로 악플러나 범죄자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마 김희철은 고(故) 설리나 구하라를 향한 비난들 가운데 상당수가 '남성주의적 담론'에서 나왔다는 부분을 악플러의 성별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 두 사람은 활동하는 내내 꾸준히 인기가 높았고, 그에 따라 여러 루머나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특히 둘을 괴롭혔던 것은 설리의 경우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 구하라의 경우 전 남자 친구였던 최종범과 있었던 사건이었다.

고 설리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찍은 사진들을 SNS에 올렸고, 이후 이 일로 그를 욕하고 성희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최종범은 구하라와 성관계를 하는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고 구하라를 협박했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관련 내용을 보도했고, 관련 댓글들도 많이 달렸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설리와 구하라의 행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두 사건은 여성, 혹은 여성혐오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결집시켰고, 이 세력은 설리와 구하라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그들을 두둔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여성 악플러가 김희철의 말처럼 설리를 보고 "여자 망신"이라고 욕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품행이 단정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손가락질이었다면, 그것은 여성 악플러가 쓴 글이었을지언정 남성주의적인 담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한 악플에는 남성에 대한 어떤 혐오나 비난이 들어 있지 않다. 때문에 고 설리와 구하라를 '젠더 갈등의 희생양'이라고 치부하는 건 오류가 있다.

상대방 말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하고(혹은 의도적으로 흐리고) 펼치는 주장은 섀도우 복싱일 뿐 유효한 타격을 가지지 않는다. 김희철은 이 댓글을 쓴 뒤 다시 자신의 마이너 갤러리로 가 위근우 기자에 대해 "살아생전 고인이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알지도 못 하고 한 번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일텐데"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설리와 구하라는 화면 너머에 있었던 사람들이고, 설사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한들 누군가가 그들이 세상을 등진 이유에 대해 함부로 '이것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을 것이다. 때문에 김희철이 아무리 두 사람과 막역했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에서 두 사람의 죽음을 '젠더 갈등' 때문이었다고 보이게 하지 않길 바란다. 설사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해도 표현이 어설프거나 잘못 짜깁기 되면 누군가가 고인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희철은 "아저씨는 뭔데 고인 이용해 이딴 글을 싸는 거냐. 이거 또 기사나면 님이 원하는대로 이슈 만들까봐 그냥 읽고 넘어가려했는데 본인 인기 얻고 유명세 올리고 싶어서 XX 빨아재끼네"라며 다소 원색적으로 위근우 기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김희철 역시 한 번 만나 보지도 못 한 타인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도 이렇게 다른 이가 글을 쓴 의도를 자신의 구미에 맞게 지레짐작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진=JTBC '77억의 사랑' 방송 화면 캡처, 위근우 기자 SNS에 남긴 김희철 댓글 캡처

정진영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