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사의 찬미', 윤심덕, 1926)

잃었던 나라를 되찾으니 동족 간 전쟁이 일어났다. 일제식민지와 전쟁이 할퀴고 간 한반도엔 쓰라린 상처가 깊게 패였다. 1910년대 외국 대중가요를 번안한 형태로 시작된 한국의 대중가요는 이런 아픈 역사를 지나며 설움을 노래하고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서울 송파구 송파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전시 '노래책, 시대를 노래하다'는 한국 대중가요의 태동기였던 1910년대부터 2020년 현재까지 한국 가요 100년사를 근현대의 노래책을 토대로 살펴 본다. 1931년 발간된 '조선가요집 제 1집'부터 방탄소년단이 표지를 장식한 타임지까지 노래와 관련된 다양한 서적들은 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댄스 가수인 이금희가 실제 무대에서 입었던 의상,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축음기 등 여러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요즘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 '노래책'은 인기 가수의 화보와 노래 가사, 악보, 시대별 인기 순위, 애독자 참여 마당 등 당시의 시대상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담은 책이다. 이런 노래책 안에는 우리의 노래를 잊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록하고자 한 의지와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자 한 대중의 바람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조선가요집 제 1집' 부록에는 검열로 먹칠된 '아리랑'의 가사가 담겨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싸우다 싸우다 아니 되면 / 이 세상에다 이미불을 지르자"라는 노랫말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아리랑'이 어떤 노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전시는 모두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광복 이전인 1945년까지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창작 대중가요가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직업 가수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2부에서는 1945년부터 1953년 사이의 한국 대중가요와 만날 수 있다. 광복을 지나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노래로 승화시킨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를 만날 수 있다. 이후 전시는 미국 음악의 영향과 상업적 대중가요가 등장하기 시작한 1950~1960년대를 지나 청년의 상징이었던 포크송과 록의 태동기인 1970년을 훑고 트로트, 헤비메탈, 발라드, 댄스 음악, 민중가요, 전통음악 등 다양한 음악들이 서로 결합하고 변화하던 1980년대의 다이내믹했던 시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류와 K팝의 성장을 만날 수 있다.

당초 이번 전시는 내년 3월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송파책박물관이 휴관에 돌입함에 따라 내년 6월 12일까지 전시 기간을 늘렸다. 휴관 기간에는 송파책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전시 서비스를 통해 전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 전시는 360도 VR 화면으로 구성돼 실제 전시회장을 거닐듯 원하는 각도, 방향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전시에서는 '우리민요', '하모니카 독습서', '인기가요 베스트 20', '팝송가사집', '조선속곡집' 등 시대를 아루르는 160여 점의 노래책과 음향기기 등 유물 200여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과 처음 만나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가수로 인정받은 채규엽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평가받는 '낙화유수'를 부른 동요가수 이정숙,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 윤심덕 등 한국 대중음악의 문을 열었던 가수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흥미로울 법하다. 전시회장 한쪽에 마련된 음악다방의 뮤직 박스에서는 DJ에게 신청곡을 접수하던 1980년대의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시대를 담아내고 대중과 호흡하며 오랜 시간 발전해왔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반도 역사와 함께한 대중음악 100년사를 훑어봄으로써 그 시절 우리가 느낀 기쁨과 슬픔, 꿈과 희망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사진=송파책박물관 홈페이지, 송파구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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