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젠더 이슈는 최근 우리 사회의 큰 화두다. 사회 전반에 걸쳐 성 불평등과 여성 혐오를 바로잡고 균형 잡힌 사회로 나아가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10대들이 선망하는 아이돌 스타들이 대거 포진된 가요계 역시 젠더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가요계의 젠더 불평등 문제를 살펴보고 나아갈 방향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귀엽고 청순하게 데뷔해서 섹시하게 소멸한다. 국내 가요계에서 많은 걸 그룹들이 걷고 있는 길이다. 청순하게 데뷔해서 청순한 상태로 해체하거나, 섹시하게 데뷔해서 섹시하게 사라져가는 조금의 변주도 있긴 하나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청순 아니면 섹시. 걸 그룹들에게 주어지는 이 같은 단조로운 선택지는 걸 그룹으로 활동하는 스타들의 활동에 한계를 짓고, 대중의 성인지감수성조차 흔들어 놓고 있다.

걸 그룹들의 교복 의상. 러블리즈, 하이틴, 여자친구, 버스터즈(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교복 입고 데뷔해 '이모'라 놀림 받는다

학교에서 입는 옷이라 해서 교복인데 국내 가요계에서는 교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아이돌 스타들을 흔히 찾을 수 있다. 어림이 미덕이 되는 걸 그룹들에게([기울어진 운동장①] 소녀시대 이후 15년째… 자라지 않는 '소녀들' 참조) 교복은 상징적이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소녀. 이렇게 커리어를 시작한 이들은 20대 중반을 훌쩍 넘길 때까지 '소녀', '요정', '여신' 같은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순간 걸 그룹들은 더 이상 어림에 머무르지 못 하게 된다.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도 그렇거니와 어리고 소녀 같은 감성으로 데뷔하는 후배들이 계속해서 쌓여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소녀다움으로 어필할 수 없을 때 걸 그룹들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선택지는 '섹시'다. 노출을 하거나 짙은 메이크업, 화려한 스타일링으로 시선을 빼앗는다. '걸크러시' 같은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고, 방송에선 '센 언니'로 이들을 포장한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발화들이 강요되고, 이를 "무섭다"고 평하는 MC들이 생겨난다. 30대에 이르러선 '이모'라는 호칭이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여성의 나이듦을 '놀림감'이라고 생각하는 엉뚱한 문화가 노골적으로 포착되는 지점이다.

최근 10~15년 간 인기를 끈 걸 그룹과 보이 그룹을 각각 살펴 보면 이런 추세가 단일 케이스가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신인 걸 그룹들이 청순하고 어린 이미지를 퍼포먼스, 스타일링 등으로 어필한다. 반면 보이 그룹들은 소년다움을 잠시 강조하더라도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보이 그룹들은 걸 그룹에 비해 훨씬 격렬한 퍼포먼스를 소화하며, 강렬함과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어필한다. 노출을 강요 받진 않지만 욕설이 포함된 19금 앨범을 발매하는 경우는 있다. 30대가 됐다고 '아저씨', '삼촌'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놀림 받는 사례를 찾기는 무척 어렵다.

■ '대중PICK' 걸 그룹의 한계

업계에서는 보이 그룹은 마니아 층으로 굴러가고 걸 그룹은 대중적인 인지도로 활동을 지속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걸 그룹의 경우 계속해서 범대중적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 그룹들이 걸 그룹에 비해 실험적인 음악과 퍼포먼스 등을 꾸준히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대중적 호감이나 인지도는 떨어지더라도 꾸준한 구매력을 보이는 팬덤 있기에 가능하다.

비슷하게 '논란'을 예로 들 수 있다. 똑같이 방송 중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더라도 '태도 논란', '정색 논란' 등에 휩싸이는 건 대개 걸 그룹들이다. 대중적인 호감도를 유지해온 걸 그룹 멤버가 정색을 하는 게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슷한 논란이 발생했을 때 보이 그룹의 경우 스타를 두둔하고 이해해 주려는 팬들의 움직임이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반면 여성 스타들은 그런 팬덤 기반이 미약해서이기도 하다.

대중성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걸 그룹들이 선 운동장을 계속해서 기울인다. 시도와 도전 속에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것인데, 걸 그룹은 그러한 시도와 도전 자체에서부터 막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많은 걸 그룹 출신 스타들이 청순함에 갇혀 활동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소속사를 찾아 연기자로 전향하는 루트를 밟는다. 가수로서는 더 이상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박송아 대중문화평론가는 "걸 그룹들의 경우 이미지가 한정돼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기획사에서는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에 맞춰 기획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미지를 넓히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사진=OSEN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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