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희.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22년 동안 코트를 지키며 여자배구 정상급 세터로 활약한 이효희(38)는 끝없는 노력과 함께 즐길 줄도 아는 선수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자배구 레전드 세터 이효희가 지난달 23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실업ㆍ프로리그 22년 선수 생활을 뒤로 한 채 정든 유니폼을 벗은 그는 도로공사 코치진에 합류해 지도자 길을 밟고 있다. 이효희는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은퇴를 결심하고 하루만 힘들었다. 처음엔 이제 선수가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은퇴가 당연한 시간의 순리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효희는 2019-2020시즌 마흔의 나이에도 리그 정상급 기량을 자랑했다. 본인이 원했다면 1~2년은 더 현역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쿨’하게 코트를 떠났다. “구단에선 코치로 어린 세터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구단의 영입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물러나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미련 없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20년 넘게 선수 생활을 하며 한국 여자배구의 역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이효희가 남긴 역대 통산 세트성공 1위(1만7105개ㆍ포스트시즌 포함)는 한동안 깨지기 힘든 대기록이다. 그는 역대 통산 디그 성공 부문에도 4위(5001개)에 올라 있다. 2013-2014시즌, 2014-2015시즌 2년 연속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V리그 여자부에서 세터가 정규리그 MVP에 오른 건 이효희밖에 없다.

이효희가 정상급 세터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튼튼한 몸과 피나는 노력이다. “긴 선수 생활 동안 아픈 적이 거의 없었다. 수술도 안 했다. 건강하게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타고난 운동신경이나 재능은 없다. 그래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베테랑이 돼서도 후배들과 똑같이 훈련하고,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후천적인 노력이 오랫동안 뛸 수 있었던 비결 같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지만, 사실 이효희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다. 수원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를 졸업하고 1998년 실업리그 KT&G 배구단에 입단해 2005년시즌 주전이 됐다. 같은 시대에 활약한 동갑내기 이숙자(40ㆍKBS N 스포츠 해설위원), 1년 후배 김사니(39 ㆍSBS스포츠 해설위원)보다 늦게 두각을 나타냈다. 오랜 시간 눈물 젖은 빵을 먹다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세터로 우뚝 선 이효희는 셋 중 가장 오래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무명 생활을 할 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겨낼 수 있었다. 또 배구를 정말 사랑하고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힘든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정말 배구밖에 몰랐다”고 돌아봤다.  

도로공사 시절 이효희(왼쪽). /OSEN

이효희는 여자배구 최고의 ‘우승 청부사’로 이름을 날렸다. 프로 생활 동안 몸담았던 4개 팀(2005년 KT&G, 2009년 흥국생명, 2013년 기업은행, 2018년 도로공사)을 모두 챔피언 자리에 올려놨다. 그는“세터는 희생하는 포지션이다. 잘하면 공격수 덕, 못하면 세터 탓인 게 배구다. 좋은 지도자, 좋은 공격수와 좋은 리베로를 만나서 제가 빛나고 우승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웃었다.

이제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새내기 코치인 그의 최종 목표는 감독이다.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배구에선 심리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선수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한 단계씩 밟아가다 보면 (감독)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온다면 꼭 감독을 해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효희가 은퇴하면서 도로공사의 세터진은 이원정(20)과 안예림(19)이 이끌게 됐다. 도로공사 구단은 청소년 대표 출신의 유망주 이원정의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는 이원정에 대해 “키도 크고 토스워크도 좋다. 장점이 많은 선수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가 많은데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심리적인 부분을 많이 가르쳐줄 것이다. 경험이 쌓이고 코트 위에서 조금 더 자신 있게 한다면 좋은 선수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애정을 보였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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