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감독이 10일 펼쳐진 FC 서울과 개막전에서 선수들을 지휘하고 있다. /OSEN

[한국스포츠경제=심재희 기자] '비운의 선수'라는 소리를 지겹게 들었던 축구천재가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다. '병수볼'. 부상 때문에 선수 시절 만개하지 못했던 그는 축구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지도자가 되어 확실히 터뜨렸다. 강원FC 김병수(50) 감독이 계속해서 어제와 또 다른 밝은 내일을 그리고 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결승골(1-0 한국 승리)을 잡아낸 뒤 포효하던 축구천재는 정작 올림픽 본선에는 나서지 못했다. 부상을 안고 계속 뛰어 몸 상태가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축구천재 김병수는 조용히 현역에서 은퇴한 후 코치로 변신해 포항 2군을 지도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선수 시절에 대한 미련을 전혀 비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급 대표팀에서 만났던 또래의 선수들이 월드컵 등을 경험하며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지만 '초보 지도자'였던 그는 기본과 기술을 거듭 강조하면서 후배들 이야기를 이어갔다. "개인이 강해야 부분이 강해지고, 부분이 강해야 팀 전체가 강해질 수 있다."
 
2009년 감독이 된 그를 다시 만났다. 존폐 기로에 섰던 영남대학교 축구부 지휘봉을 잡고 팀을 전국 강호로 이끈 김 감독을 인터뷰했다. 전국구 스타 감독이 되었으나 배가 더 고파 보였다. 단순한 욕심이 아닌 큰 그림 속에서 가지는 여유가 느껴졌다. 프로팀이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싶진 않냐는 질문에 차분한 어조로 돌아온 대답이 머릿속에 박혔다. "대학과 프로 및 대표팀은 확실히 다르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인터뷰 다음날 김병수 감독이 이끈 영남대와 경주대의 연습경기를 직접 지켜봤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물론 대학 팀 간 대결이라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으나, 영남대 선수들의 자신감과 플레이 스타일 및 팀의 완성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남대의 5-1 승리. 관중석의 한 학부모가 '영스널'(영남대학교+아스널)이라며 흥분할 정도로 영남대의 경기력은 빼어났다. 영남대에 개인적으로 아는 선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

김병수 감독은 부상으로 현역에서 조기 은퇴한 뒤 지도자로 변신해 '병수볼'의 위력을 떨치고 있다. /연합뉴스

낭중지추. 김 감독이 이끄는 영남대는 FA컵에 얼굴을 내밀며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FA컵에서 프로팀과 당당히 맞서며 큰 관심을 모았다. 비록 더 높은 곳까지 올라서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며 박수를 받았다. '병수볼'이라는 별명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병수 감독은 2017년 K리그2 서울 이랜드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짧은 통화에서 '도전'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서울 이랜드에서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병수볼' 스타일의 가능성을 인정 받았고, 강원FC의 전력강화부장을 거쳐 2018년 8월 새로운 감독이 됐다. 지난해 강원은 '병수볼'을 등에 업고 상위 스플릿에 진출했다. 뒷심이 달려 6위로 시즌을 마쳤으나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 그리고 뒤늦게 열린 올 시즌 개막전. 강원은 홈에서 FC 서울을 3-1로 꺾고 '병수볼 시즌2'의 유쾌한 시작을 알렸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김병수 감독은 초보 지도자 시절부터 확실한 축구 그림을 그려 실천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결과를 만들고, 스타 위주로 팀을 꾸리지 않으며, 모든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숫자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공을 다루고 공간을 잡는다. 말처럼 쉽지 않은 중요한 부분들을 완성하며 '병수볼'의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판이 달라졌다고 스타일을 절대 바꾸지는 않는다. 선수 시절부터 자기가 믿고 있는 축구를 더 발전시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가 뚜렷하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그린 밑그림에 계속 올바른 색칠을 해 나가고 있는 김 감독. '병수볼'의 내일이 계속 기대되는 이유다.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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