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경영 포기 선언한 뉴삼성, 발렌베리 모델이 정답
4세 경영 포기 선언한 뉴삼성, 발렌베리 모델이 정답
  • 권혁기 기자
  • 승인 2020.05.17 13:00
  • 수정 2020-05-18 08:12
  • 댓글 0

이병철 창업주에서 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진 경영승계
스웨덴 발렌베리 모델 도입에 관심 집중... 2003년 현지서 미팅가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제공

[한스경제=권혁기 기자] 재계 1위 삼성이 4세 경영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창업주 고(故) 이병철 창업주에서 이건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이어진 삼성가(家)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전문 경영인을 두고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러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해외 유명 가문들이 삼성의 새로운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경영권 승계 논란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 서초사옥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던 배경에는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등 오히려 실망을 안겨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데에 부족했기 때문으로,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고,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이다. 저의 잘못이고 사과드린다"며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아왔고,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해 뇌물혐의로 재판도 진행되고 있다.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1938년 삼성상회로 시작해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삼성은 1938년 고 이병철 창업주가 대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개업한 것을 시초로 본다. 이 창업주는 자본금 3만원, 현재 가치로 따지면 3억원으로 삼성상회를 세웠다.

농산물과 별표국수를 판매했던 이 창업주는 1942년 조선양조 인수를 계기로 사업을 확장했다. 1948년에는 삼성물산공사를 차렸고, 한국전쟁 이후 제일제당을 설립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다. 1954년에는 제일모직 설립,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으로 발을 넓혔다. 1965년 중앙일보 창간, 1969년 1월 13일 삼성전자를 세우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국내 재벌 최초 비서실 설치, 국내 기업 최초 공개채용 실시, 국내 최초 64K D램 개발 등 이병철 창업주가 세운 기록은 무궁무진하다.

1987년 11월 이병철 창업주가 작고하고 그해 12월 셋째 아들 이건희 회장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들어 신세계백화점, 전주제지,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했다. 1995년에는 한국 대기업으로는 최초로 소그룹제도를 도입했다.

이 회장은 아버지와 삼성그룹 경영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 반도체를 개인적으로 인수, 지속적으로 설득해 투자를 이끌어냈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부회장은 2012년 12월부터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 3대에 걸친 삼성 경영자의 자리이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한 사과문과 함께 경영권 세습을 포기한다고 공언했다.

/EBS '지식채널e' 캡처
/EBS '지식채널e' 캡처

160년 가까이 5대에 걸쳐 세습한 발렌베리 가문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일각에서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언급되고 있다.

앞서 이건희 회장이 2003년 스웨덴 출장 때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상무, 이학수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함께 발렌베리 가문의 지주사인 인베스터를 방문해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과 주요 임원을 만났다. 이 회장은 발렌베리가와 경영 시스템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고, 이 부회장 역시 2012년 발렌베리 회장이 방한하자 미팅을 가진 적이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명문가다. 발렌베리 가문의 세계시장 매출(1000억달러)만 놓고 보면 스웨덴 GDP의 30% 규모다.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는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집단이 차지하고 있다.

해군장교 출신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1856년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을 창립하면서 가문의 역사가 시작됐다. 1886년 앙드레가 숨을 거둔 후 21명의 자녀 중 장남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가 가업을 승계했다.

발렌베리 가문의 가훈 중 하나는 '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로, 몸을 숙여 세간의 이목을 피하라는 뜻이다.

가문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살펴보면 스웨덴 거대금융기업인 SEB와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사브, 아트라스콥코, 감브로, SKF, SAS, ABB, 허스크바나, 소비, 아스트라제네카, 스토라엔소, 나스닥OMX, AIK포트볼 등 100개에 달한다.

가문 소속 기업들은 순이익의 상당수를 발렌베리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면서 스웨덴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재단과 그룹 경영자는 급여만을 받기 때문에 세계 1000대 부자나 스웨덴 100대 부자에 포함되지 못한다. 또 반드시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하고 있으며 대학과 도서관, 박물관, 과학연구 등 공공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다.

발렌베리는 경영 세습에 적합한 후계자가 있을 경우에만 후계자를 선정하는데, ▲후계자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 하며 ▲부모의 도움없이 세계적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 실무 경험과 금융 흐름을 익혀야 한다.

후계자 평가에만 10년 이상,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을 뽑는다. 선발된 2명은 순서대로 산하 회사들의 경영진으로 참여, 경영수업을 받다가 최종적으로 그룹 지주사인 인베스터 AB와 그룹의 모태인 SEB의 CEO 직책을 교대로 수행한다.

발렌베리 가문 외에도 레고, 보쉬, 미국의 포드나 GM 등도 경영권을 분리해 운영되고 있다.

박재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삼성전자 제공
박재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삼성전자 제공

이미 시작된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바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겠느냐"는 질문에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물러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2018년 3월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을 의결했으며, 올해 2월에는 박재완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겼다.

삼성전자는 의장직에 앉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됐다"며 "2016년 3월부터 사외이사로 활동해 온 박 의장은 최선임 이사로서 회사와 이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행정가로서의 경험 또한 풍부해 이사회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은 물려주지 않을 것을 밝히면서 삼성은 4세로 경영권 승계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며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 등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 관련 불확실성이 상당히 감소, 온전히 기업가치에 근거한 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돼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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