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18일 프로야구 롯데와 LG 경기 중 임수혁(맨 아래)이 그라운드 위에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2000년 4월 18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소속 포수 임수혁은 경기 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정확한 심폐소생술만 받았어도 살아날 수 있었지만 미흡한 응급처치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그는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됐다. 임수혁이 처음 그라운드에 쓰러졌던 골든타임 5분동안 제대로 된 의료진이나 이송시스템만 있었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탄식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흘러 나오고 있다. 임수혁은 10년의 투병 생활 끝에 2010년 2월7일 숨을 거뒀다. 향년 41세.

임수혁의 불행한 사고 이후 스포츠계에선 경기장 안전대책과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야구계에선 '임수혁 사고' 후 비상상황에 대비한 응급 이송시스템이 도입됐고, 현장 직원들은 응급치료 매뉴얼을 숙지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떨어져 보인다. 긴급하게 선수를 이송해야 할 시점에서 구급차와 현장 직원 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응급 이송이 지체되는 아찔한 순간이 벌어지기도 한다. 

1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와 한화의 경기는 20년 전 임수혁과 오버랩 된다. 이날 롯데 투수 이승헌은 3회 1사 1, 2루 상황에서 한화 정진호의 직선타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타구가 워낙 빠르고 강해 이승헌도 미처 피할 틈이 없었고, 현장에서 지켜보던 관계자는 물론 방송 중계진도 놀라 비명을 지를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심판은 이승헌의 상태를 확인하고 구급차를 호출했다. 현장 의료진은 이승헌을 구급차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롯데 구단은 정밀진단 결과 미세한 두부골절과 출혈이 있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는 경기결과보다 대전구장에서의 응급대처 과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야구팬들은 자칫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대처가 안이했던 게 아니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한화 측은 초동대처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심판이 올라가 구급차를 콜업하기까지 17초, 응급차에 앞서 내야에 있던 응급구조자가 그라운드로 진입해 상태를 확인하는 데 20초, 심판 콜 사인 후 구급차가 입차하기까지 30초, 그라운드에서 응급처치하는 데 2분15초가 걸렸다고 했다. 구급차가 그라운드에 진입해 빠져나오기까지 모두 2분50초가 소요됐다는 주장이다. 
의료진의 대응이 느슨했다는 지적에 대해 한화 구단은 '선수가 의식이 있거나 움직일 수 있는지 경추 손상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게 순서고 이송 과정은 모두 절차대로 전행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필자가 당시 중계 화면을 되돌려 본 결과 약 3분20초가 걸렸다. 1분1초가 급한 상황에서 30초는 매우 큰 차이다. 

17일 열린 프로야구 롯데와 한화 경기 중 롯데 투수 이승헌(맨 왼쪽)이 타구 강습 후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의료진의 준비도 미흡했다. 중계화면은 2~3차례 구급차를 부르는 심판의 다급한 몸짓과 '서둘러'라는 육성도 담고 있다. 또한 그라운드로 진입한 응급인력은 우왕좌왕했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쓰러진 선수 상태를 확인하고 들것이나 이동식 간이 침대 등 이송 준비를 했어해 했지만 일사분란하다는 느낌보다 느릿느릿 굼뜨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프로야구 자체가 무관중으로 개막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스크도 쓰지 않은 응급인력이 선수단과 접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머리를 다친 선수를 여러 사람이 손으로 들어 옮기는 촌극도 벌였다.  

20년 전 임수혁 사건과 비교해 많은 면에서 응급시스템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이날 만큼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20년 전 임수혁이 목숨 바쳐 구축한 프로야구의 응급의료시스템이 제 구실을 하기 기원한다. 

오늘도 아찔한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운동 하나에 인생을 걸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운동선수는 스포츠맨이지 스턴트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승헌 선수의 빠른 쾌유를 소망하며 임수혁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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