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총수들 현장경영 활발…투자규모 확대하며 미래에 대비

[한스경제=강한빛 기자] 국내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쓸고 간 자리를 다시금 일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기 위해 투자 규모를 대폭 늘리거나 미래 먹거리 발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방역당국과 의료진의 헌신,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등으로 ‘K방역’의 위상을 알린 대한민국이 ‘K경제방역’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리더로 급부상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중국 시안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글로벌 현장 경영을 이어갔다. /삼성전자 제공

▲재계 총수, 코로나 이후 대비 현장경영 강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기업 총수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주춤했던 현장 경영을 재개하거나 직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국내외 상황을 살피는 등 사업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장 적극적인 모양새다. 코로나19로 멈췄던 해외 경영 행보를 4개월 만에 재개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8일 중국 시안(西安)에 위치한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찾아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영향과 대책을 논의하고 임직원을 격려했다.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은 삼성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로, 스마트폰·PC·서버 등에서 데이터 저장장치로 활용되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양산한다. 현재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설 연휴에도 시안 공장을 방문한 바 있다.

특히 이곳은 삼성의 미래 청사진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삼성은 앞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반도체 2030' 목표를 제시한 바 있어 이번 방문은 삼성전자의 향후 비전과 맞닿아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이날 미래지향적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변화에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가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며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재계 1~2위를 다투는 삼성과 현대차의 총수가 만나 미래 자동차 시장이 미래를 논의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지난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과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삼성SDI 천안사업장은 소형 배터리와 자동차용 배터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공장으로, 삼성전자는 최근 1회 충전 주행거리가 800㎞에 이르는 전고체전지 혁신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지금까지 재계 총수 모임 등에 자리를 함께한 적은 있지만 양 그룹의 총수가 서로의 사업장을 찾아 사업내용을 공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가 논의한 배터리 시장은 미래차 시장의 핵심으로 꼽혀 각국의 접전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7개국의 배터리 연구를 위해 32억 유로(약 4조2707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승인했다. 일본의 경우 토요타와 파나소닉이 연합해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 2022년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과 현대차의 이번 만남이 대한민국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판도를 뒤바꾸고 모빌리티 분야에서 혁신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7일 화상간담회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들을 격려하고 있다/SK제공

재계 총수들은 직접 현장을 찾지 못하는 대신 lT기술을 접목한 언택트 간담회에서 직원을 격려하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앞서 화상간담회를 통해 올림픽 연기와 리그 중단 등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SK 스포츠단 선수의 근황을 챙기며 격려했다. 최 회장은 이외 중국 등 해외 주재 구성원,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역량을 쏟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구성원 등과 화상 간담회를 갖고 격려한 바 있다.

최 회장은 이날 "코로나19를 계기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어떻게 가속화할지, 신규 사업은 어떻게 발굴할지, 투자 전략은 어떻게 재검토할지 현장에서 느끼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달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언택트) 업무 환경이 새로운 기업 트렌드로 자리 잡자 구광모 LG회장은 ‘디지털 혁신’을 통한 업무 문화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말까지 약 400개 업무에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 기술을 추가해 총 900개 업무에 도입한다.

LG전자는 직원이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난 2018년부터 최근까지 회계·인사·영업·마케팅·구매 등 사무직 분야 약 500개 업무에 RPA 기술을 도입했다.

RPA는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로봇 소프트웨어로 자동화하는 기술로, LG전자는 지난 2018년초 사무직 직원이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 기술을 적용했다.

▲새로운 비전 제시에 신공장 준비까지 '착착'

LG화학은 이달 초 14년 만에 새로운 비전을 선보이며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새 비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학을 인류의 삶에 연결합니다'로 LG화학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변화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의 흐름 속에서 기존 ‘화학’을 넘어 보다 확장된 사업 영역을 구축해 이에 대비하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포석이다.

SK하이닉스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신공장 건설을 차질 없이 진행 중이다. 경기 이천에 위치한 M16 신공장은 차세대 D램과 극자외선(EUV) 공정 전용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으로, 올해 완공될 계획이다. 

올해 이사회에서 미국·유럽 태양광 발전소 투자사업을 위한 출자를 결정하며, 태양광 사업 확장에 출사표를 던진 한화솔루션은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 회사인 ‘스위치딘’의 지분 20.26%를 취득하며 태양광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호주에 소재를 둔 스위치딘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제어하는 IT 소프트웨어인 EMS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특히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가상발전소(VPP)에 특화된 업체다.

VPP를 구축하면 전력 송·배전 부문의 대규모 설비 투자 없이도 기존의 발전기와 수요 자원 관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비자의 전력 사용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처할 수 있다.

시장 조사기관인 P&S 마켓리서치는 VPP 시장이 2023년 약 11억87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포스코는 계열사인 포스코케미칼을 중심으로 2차전지 소재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최정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국내외 경제상황은 올해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며 “우리가 집중하는 2차전지소재, 스마트 팩토리, 친환경에너지 등의 분야는 신성장동력으로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효성은 오는 2022년까지 3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수소 공장을 건립에 나선다. 이번 공장 건립은 지난 해 탄소섬유 대규모 투자에 이은 것으로, 정부의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견인하는 등 수소 경제 생태계를 업그레이드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아라미드 증설도 나선다. 효성은 지난 2000년대 후반 자체기술로 고강도 방탄 및 5G 소재로 사용되는 아라미드를 개발에 성공한 이후, 신성장 동력으로 아라미드 사업을 육성해 왔다. 

특히 당초 베트남 동나이성에 아라미드 공장을 신설할 방침이었지만, 전격적으로 국내 증설을 택했다. 이는 코로나 정국이후 최초의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의 국내 유턴)으로 꼽혀 주목된다. 

▲주요 대기업, 코로나에도 투자 확대

미래를 향한 기업의 경영시계는 투자 확대로 나타났다. 국내 대기업은 코로나19에 따른 실적부진에도, 미래 경쟁력을 위해 올 1분기 투자를 22%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중 1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59개 그룹 373개 계열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56조6898억원, 14조877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7.1%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9.1%(9조5607억원) 급감한 수치다. 다만 투자는 17조8379억원에서 21조7754억원으로 22.1%(3조9375억원)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반적으로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투자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59개 그룹 가운데 지난해 1분기보다 투자를 늘린 곳이 34곳이었다. 계열사 기준으로는 373개사의 절반이 넘는 190개사의 투자액이 증가했다.

그룹별로 보면 투자를 가장 많이 늘린 곳은 삼성으로 작년 1분기 3조7298억원에서 올해 1분기에는 7조27억원으로 3조2729억원(87.8%) 급증했다. 전체 대기업집단 중 투자 증가액이 1조원을 넘는 곳은 삼성이 유일했다.

또 포스코(4401억원), GS(2718억원), 한진(2615억원), SM(2382억원), KT(299억원) 등이 1000억원 이상 투자를 늘렸다.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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