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투수 이승헌이 타구 강습으로 부상을 입으면서 최소한의 투수 보호 장비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2014년 메이저리그에서 도입한 투수 헬멧 모습. /투수헬멧 제작사 boobang 홈페이지.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투수의 손 끝을 떠난 무게 140g 남짓의 야구공이 타자의 배트에 튕겨 투수와 타자의 거리인 18.44m를 최대 시속 200km 속도로 날아 투수 얼굴로 향한다면 어떨까. 아마 0.3초 후 투수는 그라운드에 쓰러진 채 고통을 호소할 것이다. 0.3초는 제아무리 반사신경이 뛰어난 투수라도 피하기 힘든 찰나의 시간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 2020시즌 KBO리그에서 나왔다. 해당 장면은 중계방송을 타고 안방으로 생생하게 전달됐다. 

17일 대전서 열린 2020 신한 쏠(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롯데 투수 이승헌이 한화 정진호의 직선타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승헌은 3회 1사 1, 2루 상황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에 왼쪽 머리를 강타당했고, 그대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심판들의 "앰뷸런스 불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파를 탔고 중계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롯데 구단은 18일 "이승헌은 여러 차례 검사를 받았다. 골절에 따른 출혈이 있어 추가 정밀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며 "지금 상태로는 수술은 없을 것 같고, 경과 관찰만 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5~7일 정도 충남대병원에 더 입원해 있다 이동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헌 사고 이후 투수도 최소한의 보호 장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투수들이 헬멧을 쓰지 않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편해서다. 2014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투수용 특수 모자의 실전 착용을 허용했다. 충격흡수 패드를 넣은 모자가 나왔지만 경기 중 착용한 건 알렉스 토레스(당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가 유일했다. 투수 헬멧 착용으로 토레스는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을 얻었다. 게임 속 슈퍼 마리오가 쓴 헬멧 만큼 부피가 크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17일 대전서 열린 롯데-한화 경기에서 롯데 투수 이승헌(사진)이 타구에 머리를 맞은 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투수 헬멧은 타자가 쓰는 헬멧처럼 모자챙과 관자놀이 보호 구역이 있고 한쪽 귀를 가린 형태였다. 무게는 280~340g 가량이고 두께는 1.8cm다. 시속 137km대 타구 충격 테스트도 거뜬히 통과했다. 오른손 투수의 경우 머리 오른쪽 옆부분, 왼손 투수는 왼쪽 옆부분에 타구를 맞는 경우가 많았기에 오른손과 왼손 투수용 모자가 따로 있었다. 이후 투수 헬멧은 불편한 장비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사실 타자들이 헬멧을 쓰는 데도 60년이 걸렸다. 1920년 클리블랜드에서 뛰던 레이 채프먼(당시 29)은 경기 중 상대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숨졌다. 채프먼 이후로도 상대 투수가 던진 공에 머리를 맞아 은퇴하거나 심각한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는 계속됐다. 그래도 타자들은 좀처럼 헬멧을 쓰지 않았다. '헬멧을 쓰면 겁쟁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71년 모든 타자들에게 헬멧을 쓰라고 강제했다. 그래도 거부하는 선수가 있었다. 보스턴 소속이던 밥 몽고메리는 끝까지 헬멧을 쓰지 않았다. 모든 선수가 헬멧을 쓴 건 몽고메리가 은퇴한 1980년부터였다. 

지금은 1, 3루 주루 코치도 헬멧을 써야 하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2007년 KBO리그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마이크 쿨바(당시 35세)는 마이너리그 1루 코치로 그라운드를 밟았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잠에 빠졌다. 쿨바는 경기 중 날아온 타구에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이듬해부터 메이저리그는 주루 코치도 헬멧 착용을 의무화 했다. KBO리그도 2011년부터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140g 남짓의 야구공을 타격하면 최대 시속 200km의 흉기로 돌변한다. 연합뉴스

박대웅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