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거나 여럿이 길을 걸으며, 그 자리에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의 조각을 맞추고 대화한다.”

“길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꾼을 만나면 객주처럼, 태백산맥처럼, 토지처럼 소설이 된다.”

자유여행자 박성기가 쓴 길 로드 에세이 '걷는 자의 기쁨'은 처음 길에 눈뜨던 시절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즐거움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는 20여 년 전 운명 같은 남한강 걷기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걷기’의 매혹에 빠졌다. 그 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스무 번이나 지나치며 두 발로 뚜벅뚜벅 거닐었던 이 땅의 산길, 바닷길, 섬길, 숲길, 강길, 고갯길에 관한 진면목을 연필로 꾹꾹 눌러써 왔다. 그렇게 걷고 느끼고 감동한 35곳의 아름다운 우리길에는 저자의 내면의 소리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어우러져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걷는 자의 자유와 희망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이 책은 그 여정의 기록이자, 여행을 통한 그의 사유의 흔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절정에서 다다른 길의 매혹

저자가 길어 올린 매혹의 길 풍광은 이십 여 년을 걷고 또 걸으며 가려 뽑은 계절의 백미로 선정할만한 명품길 여정이다. 저자는 고창의 봄의 절창인 동백숲과 장성의 가을 단풍진 백양사를 수도 없이 찾고 느끼며 서로 다른 감흥으로 돌아보았다.

그 여정엔 해남 달마고도도, 포항 내연산도, 원대리 자작나무숲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계절 두서없이 찾고 또 찾은 그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기억할만한 길을 책 안에 정성스레 담아 놓았다. 그래서 봄이면 해남 달마고도와 고창 선운사, 경북 울릉도, 양동 양산 8경이 절경인 것이고, 여름이면 정선 덕산기계곡과 울진 십이령길과 안동 녀던길이 최고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을 길엔 정선 새비재길과 인제 곰배령, 장성 백양사, 신두리 해안사구의 단풍과 갈대가 최적이며, 겨울 길엔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태백 함백산, 대관령 눈꽃마을길이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감춰지지 않는 오롯한 절경과 때 묻지 않은 비경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최소한 세 번 이상 걸었던 계절의 백미로 탄생한 이 땅의 구석구석 오지 소울로드에는 걷는 자만이 맞이할 수 있는 저만의 자유와 풍광,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책 행간에 올올이 펼쳐져 있다.

■선인들의 삶과 풍류, 고단한 노동의 수고로 빚은 길의 역사

길은 철저히 사람의 역사와 사연이 깃들여 있다. 저자는 길을 걸으며 마주한 선인들의 신산(辛酸)한 삶의 모습에 깊이 빠져 걷는 자만의 스토리에 열중한다. 그래서 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녀던길에서 마주치는 선비들의 고아한 삶과 풍류에 주목한다. 또한 울진 십이령길과 고창읍성, 영월 동강, 고성 마장터길에서는 고단한 노동의 현장을 걷던 보부상과 선질꾼, 성 쌓던 부역꾼, 뗏목꾼들의 신산한 삶의 현장을 기리며 아픈 역사의 순간들을 소환해내곤 한다. 이처럼 노동과 풍류의 옛선인들의 발자취를 훑고 더듬는 저자의 비감한 시선은 때로는 시인묵객들의 처연한 시 한수로 시름을 달래기도 하고 김소월, 정지용, 서정주의 절창을 읊조리며 10인 10색의 길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길에서 사유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다양한 물음을 만들며 더욱 깊고 넓고 진하게 삶의 성찰을 다듬는 데 제 몫의 역할을 한다.

저자는 가급적 길에 대한 직관적?철학적?감성적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길을 체험적으로 느끼며 그 고통과 행복, 여유를 제 몸으로 풀어내며 길에서 느꼈던 다양한 사유와 감성의 조각들을 펼쳐보인다.

다수는 길 에세이라는 독특한 삶의 방식에 자신만의 삶결을 입혔고, 소수는 자기만의 철학적 삶의 편린을 거칠고 뜨겁게 토해냈다. 그래도 제각각 ‘왜 나에게 이 길이 의미가 있는지’는 저만의 방식으로 글 속에 소통하고 있다.

■걷는 자의 사유에서 건져 올린 대한민국 명품 길, 자연, 사람 사진들

글이 내면의 세계의 표현이라면, 사진은 직관의 풍경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도구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걷기의 사유’를 보다 깊고 진한 울림으로 표현해주는 건 바로 그곳에서 찍은 길 사진들이다.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한 저자의 묵직한 울림을 주는 470여 컷의 사진들이 길을 걷고, 느끼고, 사유하며 체험했을 저자의 아픔과 고통, 환희와 생명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숨 쉬며 가슴 저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동을 전해준다.

땀으로 쌓은 영혼의 풍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저자의 다채로운 길의 모습은 읽는 여행서에서 보는 여행서로 사유의 깊이를 한 뼘 더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35곳의 명품 길의 대표 사진들이나 가을 내연산, 은비령, 해안사구의 가슴을 울리는 명품 사진들과 원대리 자작나무와 온통 하얀 설국을 연출하는 태백 함백산 주목 풍광, 대관령 눈꽃마을길의 쩡쩡한 겨울풍광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길에 달려가고픈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감동으로 다가가고 있다.

■길 여행자만이 느끼는 걷는 순간의 감동과 성찰의 언어들

길은 철저히 도보여행가의 눈과 마음으로 부여잡은 현장의 가슴 뛰는 언어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진득하게 묻어나오는 땀내와 가슴 벅찬 길의 현장의 직설들이 때로는 투박하게, 가끔은 미끈한 말투가 돼서 길 여행자의 육성으로 툭툭 던져져 나온다. 그래서 걸으면서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함백산의 눈꽃이, 처연하게 사라지는 영흥도의 낙조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파고드는 자작나무숲의 비상(飛翔)이 독자들 폐부로 스며들 듯이 현장의 길의 풍광을 여행자의 언어로 쏟아내고 있다. 거기엔 국문학을 공부한 저자의 문학이력도 나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길 여정의 서정과 풍취를 제대로 느끼게 하는 시인묵객들의 한시와 정지용, 김소월, 백석의 시어들은 여정을 갈무리하며 아름다운 자연의 무늬로 기억될 수 있는 운치 있는 여백을 남긴다. 여기에 함백산 주목에서, 태안 바람길에서, 점봉산 곰배령에서 눈 맞고 비 맞으며 덥고 추운 계절의 순간 속에서 느꼈을 여행자의 언어는 자연을 가장 가깝고 깊게 느끼고 사유하는 현장의 목소리로 다가오곤 한다. <기획팀>

저자 박성기는 누구?

자유(도보)여행자.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일상에 쫓겨 바삐 살다가 어느 순간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이 궁금해져서 주말이 되면 늘 배낭과 카메라를 메고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며 걷고 있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의 인연이 소중하다.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날지, 어떤 길이 펼쳐질 지 많은 기대와 소망을 안고 길을 나선다. 이십여 년 가까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들을 두루 찾아 걸었고, 일 년에 두세 차례 해외로 나가 세계의 아름다운 길들을 만난다.

송진현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