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강제징용 문제 해법 요원한 상황에서 한일관계 격화
정부가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WTO 제소 절차 재개 카드를 꺼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권혁기 기자]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했다.

나승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브리핑에서 "정부는 지금의 상황이 당초 WTO 분쟁해결절차 정지 요건이었던 정상적인 대화의 진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며 "일본의 수출제한조치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이같은 정부의 강경책은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일본과 계속 대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수출규제의 발단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해법이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수출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정부는 한일 간 수출 관리 대화가 정상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대 품목(고순도 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 수출규제에 대해 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도 유예했다.

이후 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삼았던 제도적 미비점을 모두 정비하고 일본에 지난달 말까지 수출규제 해결방안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끝내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이날 한국 정부의 WTO 제소 재개 발표에 유감을 표하며 "수출관리 수정은 수출관리제도의 정비나 그 운용 상태에 기반을 두고 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 정부의 제도 개선에 대해 '수출관리가 잘 시행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된 만큼,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 한 철회하지 않을 거라는 게 외교가의 시선이다.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압류한 일본 기업의 자산을 연내 현금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대응 수단으로 수출규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논란으로 과거사 문제 해결에 있어 '피해자 중심주의'의 중요성이 부각된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자들과 충분한 대화 없이 섣불리 안을 제시하기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이미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과 수입처 다변화를 통해 수출규제를 상당 부분 무력화한 만큼 유리한 국면이 형성되기 전에 섣불리 일본과 협상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미숙 등의 이유로 지지율이 추락한 일본 아베 신조 정권 입장에서 다수 일본 국민이 찬성했던 수출규제 철회를 꺼릴 수 있다.

WTO 제소는 최종심까지 길게는 2∼3년이 걸릴 수 있다. 정부는 일본과 대화는 계속하면서 부당한 수출규제 철회를 계속 요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번 꺼냈던 '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미국 정부가 반대하고 있어 다른 실효성 있는 압박 수단이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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