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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경제=글렌다박 기자] 2000년대 중후반, 나는 북미에서 유학했다. 대학도, 대학원도 북미에서 수학했다.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학업을 이어가면서 시험을 정말 많이 봤다. 여러 유형의 시험은 다 보았던 것 같은데, 유독 기억에 남는 방식의 시험은 ‘오픈북’ 시험이다. 나의 첫 ‘오픈북’ 시험은 내가 학부 마지막 학기에 보았던 것으로 전공 선택과목 기말고사였다. 교수님은 기말고사 시간에 원하는 책은 시험장에 상관없이 모두 가지고 들어올 수 있게 허락한다고 미리 공지했다. 나는 아주 ‘대놓고 커닝이라니, 공부는 안 해도 되겠네’라고 생각을 했다.

시험 당일, 교과서를 비롯해 단원이 지나갈 때마다 학기 중 교수가 언급했던 열 몇 권의 책을 두 팔이 부러질 듯 낑낑대며 들고 시험장이었던 강당에 들어섰다. 다른 학생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몇 권에서 몇십 권의 책을 각자의 책상 위에 쌓아 올려두고 시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기말고사 질문은 단 하나였다. ‘학기 동안 배운 모든 것에 대해 *장 이상 쓰시오’. 그때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기말고사 시험 3시간 동안 일명 ‘블루북’이라고 불리는 빈 노트 *장을 빽빽 채워 넣기 바빴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내가 가져간 책은 몇 번 펴 보지도 못했다. 결국, ‘오픈북’은 ‘요령’이 아니었고, 나의 ‘평소 실력’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시험을 낸 교수는 형평성 있으면서 지혜로웠다. 나는 이 사건 이후, ‘오픈북’ 시험이 가장 험난한 방식의 시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근래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면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시험이 이루어진다. 한양대 공과대학에서는 학생들끼리 몰래 답안을 맞춰 볼 수 없도록, 온라인 시험에서 빨리 문제를 풀어 답안지를 제출할수록 가산점을 주는 ‘스피드퀴즈’를 도입했다. 이 시험 방식은 성균관대학에서도 시행되었다. 하지만, ‘각자 시험에 몰두하는 방식이 다른데 그저 답을 빨리 낸다고 하여 점수를 높여 준다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글을 쓰는 속도가 느린 학생에게는 불리하다.’ 등 이 ‘스피드퀴즈’ 시험 방식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고려대 공과대학에서는 ‘온라인 특화 구술시험’이 진행되었는데, 이 시험 방식은 문제가 컴퓨터 화면에 뜨면 정해진 시간 안에 영상엔 정면 상반신, 특히 손이 나온 상태에서 구두로 답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이 노트북을 사용하는 만큼 ‘노트북 카메라로 영상을 잡기가 힘들다’를 비롯해 ‘문제도 풀고 촬영도 하고 저장, 제출까지 해야 하는 과정이 힘들다’ 등 다소 불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렇게 학생들이 불편함을 겪는 만큼 시험을 준비하고, 부정행위를 피할 수 있는 온라인 시험 방법을 고민하는 교수들이 있다. 서울의 모 대학 경영학부의 A 교수는 최근 전공과목 중간고사를 앞두고 “몇몇 학생들이 대리 시험을 모의한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제자들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1일 인하대 의과대학에서 온라인 시험 중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1, 2학년 92명 학생의 점수는 0점 처리되고, 담당 교수와 상담과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나는 온라인 시험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교수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나는 유학 시절 ‘여러 유형’의 시험을 치렀다고 소개했다. 그 시험 중에는 몇 시간 안에 객관식 문제를 답해야 하는 온라인 시험도 있었다. 며칠 내에 객관식과 주관식을 섞어 시험지 형태로 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온라인 객관식 시험의 경우, 답을 대놓고 공유할 여지가 충분히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객관식 시험은 모든 학생에게 다른 문제가 출제되었다. 20분이 주어졌으며, 문제는 단 세 문제뿐이었다. 기악과의 경우,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곡, 솔로, 카덴자, 오케스트라 연주 부분 (excerpts) 등’을 녹화한 단 3분의 영상을 교수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기말고사가 대체된 일도 있었다.

객관식과 주관식을 섞은 시험의 경우, 문제는 열 문항 정도가 되었다. 교수는 일주일의 시간을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한 후, 단독부터 네 명까지 함께 풀어서 낼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시험은 수위가 높고, 광범위하여 단독으로 푼 학생은 드물었으며, 그룹으로 풀기를 선택한 학생들은 두세 문항씩 맡아 어떠한 방법으로든 문제를 풀어오는 것으로 약속하였다. 그룹을 선택한 나는 문제의 답을 찾아 도서관으로, 답을 풀어줄 수 있는 대학원생이 있는 연구실로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여러 다양한 성향을 지닌 학부 동료들과 함께 시험을 치르면서 단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또, 배웠다. 온라인 시험에서 실력이 좋은 학생과 함께 시험을 보아 함께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도, 학기 말에 A+을 받을 만한 학생은 A+을 받고, D를 받을 실력의 학생은 결국 D를 받는다. 이유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개인이 치르고, 최종 성적 비율에서 높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직함’과 ‘정의로움’을 배제하고도 충분히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이자 최고학부인 ‘성균관’은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국내 대학은 ‘학점’이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은 취업의 징검다리가 된 지 오래다. 앞으로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하며 시험을 펼치게 될 때, 중요한 쟁점은 학생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강의로 인해 얼마나 배움을 얻었는가’, ‘강의는 학점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였는가, 아니면 평생의 유익함으로 남았는가’일 것이다.

글렌다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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