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일본 수입 품목 대부분 루트 다변화와 국내 기업 제품으로 선회
핵심 소재 수급 안정적… 수출규제 관련 일본내 쓴소리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 /외교부 제공

[한스경제=권혁기·김창권 기자] 정부가 일본이 유지하고 있는 수출규제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의 수출제한조치와 관련해 제소 절차를 재개한다고 밝혀 수출제한조치가 강화될까 기업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7월 한국을 상대로 고순도 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의 수출 '포괄 허가'를 '개별 허가'로 전환하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등 수출규제를 적용했다.

3대 수출규제 품목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로 특히 고순도 불화수소(HF·에칭가스)는 반도체 제조공정 중 웨이퍼 세척을 통한 불순물 제거에 사용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업체들이 필요로 한다. 에칭가스는 독성 때문에 오랜 시간 보관이 어렵고, 적시에 공급해야만 한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액체 불화수소 일부를 국내 업체 솔브레인·램테크놀러지 등 국내 업체들의 물량으로 대체했다.

LG디스플레이 또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생산라인에서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품으로 완전 대체하기로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후 곧바로 고순도 불화수소 대체 테스트에 나섰다.

플루오린(투명) 폴리이미드는 TV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필수 소재다. 일본의 수출규제 전부터 코오롱인더스트리, SKC 등 국내 업체들이 개발하고 있지만 일본 스미토모화학에서 공급을 받고 있던 삼성전자는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1세대 갤럭시 폴드에 일본 스미토모에서 제작한 플로오린 폴리이미드를 납품받아 생산할 계획이었다. 초도 물량에 한해 투명 플로이미드를 확보해 둔 건 다행이었다.

반면 모든 스마트폰용 OLED를 LG디스플레이를 통해 공급 받고 있던 LG전자는 롤러블 TV에 필요한 투명 플로이미드를 국산화하는 등 일본의 영향에서 비껴갔다.

삼성전자는 일본산 핵심 소재의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삼성종합기술원 필름소재랩을 통해 꾸준히 개발을 해왔고, 지난달 투명 폴리이미드와 관련한 특허를 출원했다.

투명 플로이미드에 대한 국산화도 순조롭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1일 경북 구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업장을 방문해 투명 폴리이미드 생산설비 등을 둘러보고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있기 전부터 선제적인 노력으로 일본의 수입을 대체했다고 하니 자랑스럽다"고 격려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향후 제품 공급을 위한 투자도 지속하고 있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자회사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미국 인프리아(Inpria)라는 스타트업 회사에 꾸준히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인프리아는 2007년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 연구소에서 분사한 회사로,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470만달러, 2017년에는 2350만달러 후속 투자를 진행했고, 올해 2월에는 3300만달러를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이번 투자에는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와 대만 TSMC도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1일 경북 구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업장을 방문해 투명 폴리이미드(PI) 생산설비와 마스크용 멜트블로운(MB)필터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소·부·장 산업 살릴려면 중소·중견 기업 실질적 지원 필요

일본 수출규제가 촉발된 이후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정책을 강화하고 나선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소부장 GVC' 재편 3대 정책을 발표하고,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정한 핵심 품목 100대 품목을 338개로 확대했다. 또 수급 다변화 지원과 국가 간 협력 채널 강화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연일 소·부·장 기술 개발에 지원에 나서며 규제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세제조정 등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육성하고 있는 소·부·장 산업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2~3대에 걸친 가업승계로 기술과 노하우가 오랜 기간 축적돼야만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소·중견 기업이 후대에 상속을 하려고 해도 높은 상속·증여세율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전액 유예하거나 면제하는 ‘특례사업승계제도’를 도입한 지 2년 만에 신청 건수가 연간 3815건으로 10배 급증했다.

이런 특례제도는 중소기업 2세가 가업을 물려받을 때 내야 하는 증여세와 상속세를 전액 유예해준다.

한국도 상속재산의 200억~500억원까지 세금을 공제해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지만 까다로운 이행 조건 때문에 활용률이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2세 기업인이 7년간 업종과 자산을 변경해선 안 되고, 고용 인원도 물려받을 당시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 상속·증여 재산의 5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현실에선 가업 승계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업계에서는 세계 최고인 상속·증여세율을 낮추는 것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소재와 부품, 장비 국산화 관련 기업들에 투자하는 일명 '소부장' 펀드도 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승자박 일본 수출규제… 탈일본 행보에 일본 제조업체 실적 악화

일본은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으로 사용했지만 이는 자승자박(自繩自縛)으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지난 1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포스코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 합작한 피앤알(PNR)에 대한 압류명령 결정 등을 공시송달했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로, 법원 결정에 따라 오는 8월 4일 송달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는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확정 판결했지만 일본 외무성이 해외송달요청서를 수령하고도 아무런 설명 없이 관련 서류를 반송하는 등 10개월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도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가 곧 시행될 전망이다.

여기에 일본이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삼았던 제도적 미비점을 한국 정부가 모두 정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풀지 않아 당위성 마저도 잃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출규제로 인해 일본 제조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됐다는 점이다.

스텔라케미화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31.7% 축소된 24억700만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JSR, 스미트모화학, 모리타화학 모두 수출이 줄면서 실적이 감소했다.

결국 일본은 얻고자 했던 것은 얻지 못하고 오히려 '탈(脫)일본화'를 부추겼다는 평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20일 "각국의 액정패널·반도체 제조업체들 일본산 소재를 사용해온 건 안정적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인데 일본의 수출관리(규제) 강화 때문에 이 '관습'이 흔들리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이후 한국 기업들이 대체 가능한 공정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일 정부의 대립이 일본계 기업 현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신문은 지난 4일 사설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으로 경제가 세계적으로 하강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무역 제한은 피해야 한다. 지금 재검토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애초 수출관리 강화는 일본·한국 사이에 대립하던 징용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측이 대항 조치로 발표한 것"이라며 "역사 문제에 경제를 휘감는 것은 적절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일본 국내에서도 강한 비판이 일었다"고 꼬집었다.

국내 기업들이 핵심 소재 수입처의 다변화를 통해 안정을 찾았지만 우려는 남아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을 늘리거나 한국을 상대로 수출과 수입 제한을 확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부 현지 언론은 일본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WTO 제소 재개와 함께 대응책으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낼 수 있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면 국내 기업들 역시 영향권에 들 전망이다.

권혁기·김창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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