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 폐쇄된 학교 모습.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입법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하는 충고다. 실제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입법 공백이 사태 확산을 키웠다. 당시 면역력이 취약한 아동 및 청소년이 주로 다니는 학교, 어린이집 등과 좁은 공간에 밀집해 학습하는 학원 등에서 감염병이 쉽게 확산됐다. 국회는 메르스 사태 후 이런 입법 공백을 깨닫고 2018년 12월 18일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이하 학원법)을 개정해 학원설립·운영자에게 감염병에 감염 또는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거나 감염될 우려가 있는 학습자 및 강사를 격리시킬 수 있는 권한(학원법 제5조의2)을 부여했다. 

메르스 사태의 교훈으로 만든 입법은 코로나19 사태 방역에 활용됐다. 해당 법을 근거로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전염병에 걸린 학생과 강사를 격리했고, 감염병 확산 사전 봉쇄에 큰 효과를 봤다. 격리조치는 신체를 구속하는 행위로 법령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시행될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현재 여전히 입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그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분야가 꽤 많다. 특히 스포츠계에 몸담고 있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타격을 입었다. 대표적인 입법 사각지대로 태권도장이나 유도장 또는 합기도장과 같은 곳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시설을 운영하는 대표인 관장은 학원법에 따라 관원이나 사범을 격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태권도장이나 유도장은 학원법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이다. 

등교에 앞서 선별 진료소로 향하는 아이들과 이를 지도하는 교사의 모습. 연합뉴스

학원법 개정 전 법률인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이하 사설강습소법)은 체육 교습소도 학원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1989년 3월 31일 체육시설에 관한 업무를 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으로 일원화하면서 체육을 가르치는 곳은 더 이상 학원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됐다. 대신 태권도장이나 유도장은 '체육도장'이 됐고, 피트니스클럽은 '체력단련장'이 됐다(체육시설업법 제10조 제1항 제2호). 체육시설업자는 감염병에 걸린 사람,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거나 감염될 우려가 있는 학습자 및 강사를 격리할 수는 있는 권한이 없다. 결국 이런 부분들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들의 체육시설 이용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관련 종사업자들의 수익은 엄청나게 줄어들고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났다. 

체육도장(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과 체력단련장(헬스클럽)도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만큼 학교, 어린이집, 학원과 마찬가지로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 체육도장 강습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감염병 예방에 있어 체육 시설을 학교나 학원과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까닭으로 체육 시설 관리자들은 생계 위협을 받으며 볼멘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법이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

의료진과 전염볌 감염 환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입법 사각지대는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메르스 감염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 절반 이상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일 국립중앙의료원 이소희·신형식, 서울대병원 박혜윤·박완범, 서울의료원 이해우, 단국대병원 김정란 연구팀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살아남은 148명 중 63명의 정신건강을 분석한 결과 완치 1년 후에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르스에서 완치한 생존자 63명 중 34명(54%)은 1년 후에도 한 가지 이상의 정신건강 문제를 겪었다. 생존자의 49.2%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했고, 27%는 우울증이 있었다. 22.2%는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중등도 이상의 충동을 보였다. 생존자의 28%는 불면증을 호소했다. 

생존자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앓는 원인으로는 감염자라는 사회적 낙인과 감염 당시 불안 등이 지목됐다. 감염자에 대한 사회의 낙인을 높게 인지할수록, 감염 당시 불안 수준이 높을수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위험도 높아졌다. 특히 메르스로 가족이 사망했을 때 우울증 위험이 올라갔다. 과거 정신과 치료력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메르스 감염의 심각도는 완치 후 정신건강 문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연구팀은 감염의 심각도보다는 심리·사회적 측면에서 질환을 어떻게 경험하고 인지하는지가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책임자인 이소희 박사는 "코로나19로 환자와 격리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이라면서 "이번 연구는 환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지금 코로나19 사태에 전하는 교훈은 결국 예방이 최선의 대책이라는 메시지다. 가장 중요한 열쇠인 예방을 철저히 하기 위해 입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스포츠 문화계가 입법 사각지대 그늘에 갇히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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