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스마트폰 사용했지만 아직 어려워"…시니어 강사제도 등 자구책 마련나서
[한스경제=마재완 기자] 최근 서울 안국역 근처에서 만난 한 노인은 "통화 기록 삭제를 하고 싶은데 뭐 누르면 되나요?" 스마트폰을 들고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점박이 버튼', '동그란 것' 등 스마트폰과 거리가 먼 표현까지 동원된 설명을 듣고 그제서야 의문점이 해결된 노인은 “20년 동안 쓰던 휴대폰을 하루아침에 바꾸려니 어려운 점이 많다”라고 한숨을 내 쉬었다.
이런 노인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를 불문하고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부터 게임까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에 시선이 고정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스마트폰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됐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힘들어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바로 2G 서비스 이용자들이다.
KT이어 SK텔레콤도 2G서비스 종료 앞둬
지난 2012년 KT에 이어 이달 초 SK텔레콤이 2G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SK텔레콤은 유지비용 등을 이유로 지난해 11월부터 꾸준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2G 서비스 폐지 승인을 신청 해왔고 수차례의 반려 끝에 지난 12일 서비스 폐지가 허가됐다.
SK텔레콤 2G 서비스를 고수하던 이용자들은 내달 28일 이전에 3G 이상에 해당하는 서비스로 변경 신청해야 한다. 7월 6일부터 28일 사이에 순차적으로 2G 서비스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기한이 지나면 기존에 사용하던 2G 휴대폰을 완전히 사용할 수 없다. 다만 3G 이상으로 변경 하더라도 본인이 기존에 사용하던 번호는 2G 네트워크 자체가 유지되는 내년 6월까지 사용할 순 있다.
이번 폐지는 무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내에 종료돼 눈길을 끈다. 2012년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중 2G 서비스를 가장 먼저 종료한 KT가 약 77일에 걸쳐 순차적으로 종료한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당시 KT를 통해 2G 서비스를 이용하던 사람은 전체 KT 가입자의 약 1%인 15만명 정도였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도 2G 이용자 수가 전체의 1% 이하로 감소될 때 서비스 종료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1일 기준 약 38만명(1.21%)이 2G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서비스 종료 결정 사실을 발표했다.
2012년부터 꾸준히 2G 서비스 폐지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010통합반대운동본부’ 관계자는 "모든 번호를 010으로 통합하는 것에 반대한다"라며 "옛날 번호를 기억해 오랜만에 연락되는 지인도 있고 특히 자영업자들은 이전부터 사용하던 번호가 하나의 자산이다. 기존 거래처와 잠시 사업이 중단 되더라도 기존 번호를 기억해 다시 연락이 오면 재개되는 경우도 있다"라며 강한 불만을 표했다.
011, 017 등 이전에 사용해오던 번호를 통해 오랜만에 연락이 닿는 경우 등도 있는 만큼 갑작스럽게 단기간 내 갑작스럽게 번호를 바꾸라고 통보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안 없는 정부, 2G 종료 강행
정부도 2G 서비스 폐지 허가에 대한 변명 거리는 있다. 올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긴급재난문자 발송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런데 2G 서비스를 사용하는 국민 중 긴급재난문자 수신 기능이 미탑재된 단말기 사용자가 있어 안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긴급재난문자를 관리하는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는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는 긴급재난문자를 2G, 3G, 4G(LTE), 5G 및 네비게이션 등에 발송하고 있다”라며 “다만 일부 2G 단말기 중 긴급재난문자 서비스 수신 기능이 미탑재 된 모델이 있어 해당 단말기를 사용하는 국민은 긴급재난문자 수신에 제한이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4월 각 이동통신사마다 긴급재난문자 수신이 불가능한 단말기를 사용하는 이용자에 대한 단말기 교체와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 해달라는 요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긴급재난문자 수신이 가장 필요했던 올 상반기에는 정작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2G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 이용자는 고령자가 많다. 이들이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등 중요한 정보가 포함된 긴급재난문자를 수신하지 못하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 손실도 적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긴급재난문자 발송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도 지자체에 별다른 지침을 전달하진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상황과 관계자는 “우리 부서는 전달받은 내용을 발송하는 업무만 진행할 뿐”이라며 “2G 단말기를 사용해 긴급재난문자를 수신하지 못 하는 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업은 수익성 고려할 수밖에 없어
모호한 입장의 정부와 불만을 가진 소비자 사이에 끼인 이동통신사들도 난감한 상황이다. 2G 서비스 사용자가 적어 수익성이 낮은 데다, 2G 네트워크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난해 2G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서만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모됐는데 정작 수익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이동통신사의 수익은 데이터 사용에서 나오는데 2G 서비스 이용자들은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부족한 수익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2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장비도 매우 노후화 됐는데 해당 장비를 만든 제조 업체에서도 더 이상 부품 생산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시설 유지비용을 생각하면 회사 입장에선 굉장한 손해”라고 난처함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기정통부는 SK텔레콤에 대해 기존 2G 서비스 이용자들이 3G 이상 서비스로 원활히 전환할 수 있게 대책 마련을 주문한 상황이다. 이에 SK텔레콤은 서비스 전환을 신청하려는 기존 2G 서비스 이용자 수요에 대비해 ▲단말기 무료 교체 ▲요금 할인 ▲보조금 지급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준비하고 있다.
2G 서비스 이용자 고려한 디지털 포용 요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디지털 뉴딜 첫 행보로 AI 데이터 구축 기업 더존비즈온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업 방문 자리에서 디지털 소외를 방지하기 위한 포용적 디지털 경제를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도 지난 16일 디지털 뉴딜 3차 추경 예산 8324억원 중 600억원(7.2%)을 디지털 포용에 집행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2G 서비스 축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다보니 새롭게 3G 이상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이용자들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특히 디지털 포용 예산 600억원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인터넷 뱅킹 사용법 등 이미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이용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25개 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은 강북구 소재 경로당 회원은 “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이제 2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통화나 간단한 문자 메시지 기능 외에는 사용이 어렵다”라며 “(정부가 발표한) 그대로 스마트폰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업들은 최대한 2G 이용자들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2012년 KT는 2G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3G 단말기로 변경하는 이용자에 대해 2년간 매월 6600원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무료 단말기를 제공했다.
이번에 2G 서비스를 종료를 결정한 SK텔레콤은 지난해부터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알기 쉬운 스마트폰 교실’을 운영 중이다. 수강생 대부분이 노년층인 만큼 나이대가 비슷한 노년층에서 시니어 강사를 선발해 운영한다. 이를통해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가능해 이해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유영상 SK텔레콤 MNO사업부장은 “알기 쉬운 스마트폰 교실을 통해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새로운 직업인 시니어 강사 양성에도 더욱 힘쓸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2G 서비스 이용자 47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LG유플러스는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아직 LG유플러스에서 2G 서비스 폐지 관련 요청이 들어온 것은 없다"라며 "다만 2G 네트워크가 내년 6월까지 유지되는 만큼 그 안에 별도 요청이 접수될 가능성은 있다"라고 말했다.
마재완 기자 jwma@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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