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데뷔 9년 차 배우 이주영이 영화 ‘야구소녀’(18일 개봉)로 또 한 번 독립영화에 얼굴을 내밀었다. 전작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트렌스젠더 마현이 역으로 대중에게 각인되는 연기를 펼친 이주영이 이번에는 여자 야구선수로 분해 관객들에게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주영이 극 중 연기한 주수인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인물이다. 이주영은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점들이 시나리오 안에 표현돼 있었다”라며 영화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야구소녀’를 택한 이유는.

“영화 시작할 때 ‘1999년 이후로 여성이 프로야구에 진출할 수 없다는 법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여성 프로야구 선수는 탄생하지 않았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시나리오에도 똑같이 쓰여있었다. 그 문장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차별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스포츠에서 여성, 남성이 구분되는데, 야구는 여성이 프로에 갈 수 없다는 법이 없는 데도 아직까지 탄생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실제로 주수인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와 다른 분야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부분들이 시나리오 안에 담겨있었고, 공감하면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오면서 느낀 거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지금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차별도 있을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오는 과정 안에서 느꼈던 것, 주변의 만류나 걱정들 등 공감할 포인트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10대나 20대는 수인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엄마나 아빠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연령층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모든 인물들의 행동이 다 이해가 가고, 캐릭터 각각에 애정이 담긴 시나리오라서 끌렸다.”

-수인과 비슷하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비슷하다고 느낀 부분도 있지만, 나보다 더 단단하고 뚝심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수인은 주변인들, 더 나아가서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작은 히어로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해서 부딪히면서도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것 자체로 수인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라면 과연 수인이처럼 할 수 있었을까, 한 번 더 고민하고 굽히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도 외부요인이 아닌 나로 기준을 두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그들에 의해 규정될 수 있지만 나 스스로는 그렇지 않으려고 한다. 배우로서 작품을 택할 때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그러려고 한다.”

-투구폼에 대한 부담도 컸을 것 같은데.

“신체적으로 부딪혔던 힘듦보다 부담감이 훨씬 컸다. 주어진 시간 안에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프로가 되고자 하는 아이를 표현해내기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감을 갖고 임했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대역도 있고 CG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훈련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실력이 느니까, 촬영장에 가도 대역이 없더라. 결국 온몸으로 부딪혀서 했어야 했다. 할 수 있는 시간 안에 최대를 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활약했는데 최근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로 대중적 인지도도 높아졌다. 향후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칠까.

“작품 선택에 있어서 그때의 상태라든지 욕구가 반영이 안 될 수 없는 것 같다. 상업적인 영역으로 나가야겠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메인스트리트 장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니까. 인지도라는 건 더 많은 기회의 장이 열린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런 장점을 취하고 싶을 때는 상업 무대를 택하고, 진득하게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면 독립영화를 찍을 수 있고, 그때그때 선택들로 작품을 하게 될 것 같다.”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작품이나, 트랜스젠더 역할을 소화하며 ‘젠더 프리’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됐다.

“캐릭터만 봤을 때 비슷한 건 없었는데, 작품의 결이나 갖고 있는 메시지가 성소수자나 약자를 대변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런 이미지가 생겼다. 작품성이나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작업을 한 것이지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배우 생활을 계속 해나가면서 외연을 넓혀갈 것이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들을 대변하는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있나.

“요즘은 소수자나 약자, 인권, 여권일 수도 있고 이러한 권리들이 기본적으로 시나리오 안에 탑재돼있는 것 같다. 그런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라고 평가를 받는 것 같고, 배우뿐 아니라 제작진도 그런 부분들을 간과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시나리오나 대본을 보면서 더 배우는 것도 있고, 이제 깨어있어야 하는 때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런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받은 게 있을까.

“20대 초반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전부터 좋은 영화들이나 미디어를 접하면서 가치관이 많이 견고해졌다. 어렸을 때도 주로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을 보면서 좋은 작품이란 저런 작품이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나 삶에 쫓겨서 잊고 살아가고 있었던 부분을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최근에는 ‘미안해요 리키’(2019)를 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권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 번 해보게 됐다. 시의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듯, 좋은 배우도 지금 사회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싸이더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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