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부작용 초래…해외국민 ‘희생양’
플랫폼 제공 기업·산업계 경쟁 촉발
대한의사협회 로고. /대한의사협회 제공

[한스경제=이승훈 기자] 대한의사협회가 재외국민 대상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며 ‘원격의료를 위한 원격의료’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이는 해외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증되지 않는 위협 속으로 모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2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를 포함한 8건의 안건을 상정하고 승인 의결했다.

이에 의협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의료인과 환자 간 대면진료의 기반과 국민의 건강권을 저버리면서 규제혁신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라는 몽상적 효과만을 앞세운 무분별한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 확대의 즉각적 중단을 요구한다”고 운을 뗐다.

의협은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 공익적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신기술?신산업 육성을 위한 기존 규제에 대한 특례(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특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기본적 가치 보다 산업적·경제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 주객이 전도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규제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산업융합규제특례심의위원회는 재외국민에게 진료, 상담 및 처방을 하는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 시행에 대한 임시허가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임시허가의 내용은 국내 의료기관이 전화·화상 등을 통해 재외국민에게 의료상담·진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 요청 시 처방전을 발급한다는 것이다.

의협은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제한적이고 임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의료인-환자 간 전화 상담·처방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나 검증도 없이 정책의 실험장을 재외국민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은 주객전도의 전형이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인-환자 사이의 원격의료는 비대면 상황에서의 제한적인 소통과 근본적 한계로 인해 그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또 “이러한 원격의료는 결국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과 산업계의 경쟁을 촉발하고 불필요한 수요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그 허용 형태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영리추구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 의료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 또한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증 환자를 놓고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이 경쟁을 벌이는, 그야말로 무질서 그 자체인 의료전달체계 아래에서 원격의료의 허용은 동네의원의 몰락과 기초 의료 인프라의 붕괴로 이어져 국민 건강에 치명타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물론 재외동포나 해외에 있는 국민의 건강권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국가가 최선을 다하여 보장해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그 방법은 외교를 통한 외국과의 상호협조를 통해 실질적인 치료의 기회를 보장하는 방식이어야 하며 본질과 동떨어진 원격의료 방식은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선을 빚거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는 증상만으로 다른 감염성 질환과 구분이 불가하고 의심이 된다면 가능한 빨리 확진검사를 받는 것이 최선인데 증상을 확인하는 정도의 원격 상담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조기 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또 “국내 의사가 해외에 있는 환자에게 처방전을 발급하더라도 외국에서 이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 받거나 처치를 받을 수 없다”라며 “해당 국가의 우리나라 의사면허에 대한 인정 여부, 원격 의료에 대한 인정 여부, 보험제도와 보장 범위, 지불 방법, 의료행위의 책임소재 등 수 많은 법적인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의협은 “당연히 외국의 약사나 의료기관이 우리나라 의사가 해외에서 발급한 처방전에 따라 조제, 처치해줄 의무가 없다”며 “입장을 바꿔놓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자국 의사에게 받은 처방전을 가져와 우리나라 약국이나 병원에 와서 치료를 요구한다고 해서 이를 시행해줄 곳이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오히려 해당 국가의 법률 위반 문제를 야기해 외교 및 통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의협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제도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의료계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외면한 채, 엉뚱하게 그 대상을 해외국민에 확대하는 정부의 무모한 정책 실험에 대한 즉각적 중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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