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헌.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공자는 서른을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인생의 뜻을 분명히 세우는 시기다. 프로야구에도 서른 살에 잠재력을 만개하는 선수들이 많다. 서른 살이면 고졸 선수는 프로데뷔 10년, 대졸 선수는 6년 차에 이른다. 신체적, 기술적 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동시에 경험까지 더해져 선수 생활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나이가 바로 서른 살이다.

2020시즌 KBO 리그에선 서른 살에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한 정찬헌(30ㆍLG 트윈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정찬헌은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9이닝 3피안타 2볼넷 6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팀의 3-0 승리와 7연패 탈출을 견인한 역투였다. 2008년 프로에 입단한 그는 프로 입단 12년 만에 생애 첫 완봉승을 올렸다. 

이날 그야말로 완벽한 투구로 SK 타선을 잠재웠다. 2회 1사 후 이재원부터 9회 첫 타자 정의윤까지 4사구조차 허용하지 않고 21타자 연속 범타 처리했다. 9회 1사 후 김경호에게 좌전 안타를 맞아 노히트 행진이 끊기고, 1사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후속 타자 2명을 모두 범타 처리하며 완봉승을 만들어냈다. LG 트윈스 토종 투수가 완봉승을 거둔 건 2016년 9월 18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 류제국(은퇴) 이후 4년여 만이다. 경기 뒤 정찬헌은 “솔직하게 경기에 집중하느라 노히트라는 걸 9회말을 앞두고 알았다. 안타를 맞은 뒤에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며 "오히려 강남이가 아쉬워해서 '아쉬워하지 마라. 팀이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완봉승은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다"라고 웃었다.

신인 시절 정찬헌. /OSEN

그는 프로 첫해인 2008년을 제외하곤 지난해까지 줄곧 불펜 투수로 뛰었다. 지난 시즌 허리디스크 재발로 수술대에 올라 일찌감치 시즌을 접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올 시즌에도 정찬헌의 선발 안착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긴 재활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그는 꾸준한 호투를 펼치며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 6경기(38.2이닝) 4승 1패 평균자책점 2.56을 기록 중이다. 최근 4연승, 5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행진 중이다. 규정이닝을 채우진 못했지만, 리그에서 가장 강한 5선발로 활약하고 있다.

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올해 정찬헌의 빠른 공 평균 구속은 시속 141.6km에 그친다. 시속 140km 중후반을 기록했던 20대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 수치다. 그러나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전성기 시절보다 쉽게 타자를 요리한다. 

류중일(57) LG 감독은 올 시즌 지난해 허리 통증을 앓은 정찬헌과 경험이 적은 신인 이민호(19)를 배려해 둘을 번갈아 5선발로 쓴다. 정찬헌은 ‘10일 로테이션’을 꼬박 지켜주는 류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고 있다. 그는 “때로는 등판을 기다리다 지칠 때도 있다”고 농담하면서도 “감독님과 코치님이 배려해주셔서 감사하다. 꼭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찬헌은 프로 입단 이후 선발, 중간 계투, 마무리를 모두 경험했다. 경험은 현재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어렸을 때 경험이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 쌓이면서 더 좋은 투구를 하는 것 같다. 모든 시간에 감사하다”고 했다.

12년 만에 딱 맞는 옷을 입었다. 정찬헌의 야구인생 제2막도 활짝 열렸다. 서른, 잔치는 시작됐다.

인천=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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