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호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항공업계 전반이 몸살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이스타항공 등이 지난해 대외관계 악화와 올해 코로나19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면서 항공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난관에 봉착한 업계는 곧바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자사 직원들에게 무급휴직을 시행했고, 급기야 알짜 자산 매각과 기업 인수·합병(M&A)를 추진하며 뼈와 살을 깎아내는 고통분담에 돌입한지 오래다.

정부와 관계 부처도 어려움에 빠진 항공업계를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내놓는 대책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수그러들 줄 모르고 확산하는 코로나19와 달리 추진 속도가 지지부진해서다. 이로 인해 회사를 위해 근무하던 근로자 상당수의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협상이다. 지난달 말 예정된 거래 종결(딜 클로징) 시점을 넘기면서 인수 협상은 올해 말까지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 협상이 늘어지는 건 두 항공사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서다. 이스타항공은 그동안 경영난을 이유로 지급하지 않은 5개월치 임금의 일부를 제주항공이 부담할 것을 제안했고, 제주항공은 계약 선결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인수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는 동안 끝 모를 코로나19에 길 위로 내몰린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은 지쳐가고 있다.

지난달 18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인 이스타항공 노조의 차분한 목소리엔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이 담겨 있었다. 모두 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 또는 밝은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이었다.

집회 현장 끝자락에 앉아 있던 이들은 또래인 20대 후반인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성인 남성이라면 이제 겨우 취업문을 통과해 사회 초년생으로 첫걸음을 내딛을 시기다.

하지만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움켜쥔 두 항공사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최근 이스타항공의 대주주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보유 지분 전부를 회사에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제주항공은 “보유주식 헌납이 인수 협상 진전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 모르겠다”며 완강한 태도를 유지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이들에겐 기업의 이익이 갈 곳 잃은 근로자들의 생존보다 자신들의 입장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한 식구이자 넓게는 업계 동료인 사람들의 생사는 뒷전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직원들 일부에게 무급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서울시와의 갈등으로 서울 송현동 부지 등 자산 매각에 애를 먹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협상이 늦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지원 규모도 정부의 항공사 자산 대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정부 지원을 받은 항공사 7곳의 정부 자산은 44조9000억원이었지만 지원은 7.1% 수준인 3조2000억원에 그쳤다.

항공사와 주변 이해 관계자, 나아가 정부까지 항공업계 근로자의 피가 마르게 하고 있는 셈이다.

퍼주기식 지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근로자가 새 직장을 찾는 등 다른 방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빠르고 확실한 마무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항공사도 사람이 움직인다. 사람이 건강해야 항공사도 건강하다. 정부와 관계 기관·기업의 신속한 결단으로 근로자들의 병든 몸과 마음도 빠르게 치유되길 바란다.

김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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