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출신ㆍ국내파ㆍ늦깎이... '별난 통역' 정재균이 밝힌 스포츠 통역사의 세계 [인터뷰]
공대 출신ㆍ국내파ㆍ늦깎이... '별난 통역' 정재균이 밝힌 스포츠 통역사의 세계 [인터뷰]
  • 용인=이정인 기자
  • 승인 2020.07.06 17:06
  • 수정 2020-07-06 17:06
  • 댓글 0

정재균 대한항공 통역. /임민환 기자

[한국스포츠경제=이정인 기자] 프로스포츠 통역사는 화려한 무대 뒤의 숨은 조력자다. 팀 전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의 눈과 귀 구실을 한다. 또, 외국인 코칭스태프가 국내 선수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연결고리 노릇을 한다. 정확한 의사소통은 팀 전력이나 경기력과 직결되기에 통역의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 통역사는 단순히 다른 언어를 번역해서 전달하는 통역 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림자처럼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부모처럼 일상생활을 돕는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선수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스포츠 통역사다.

현재 국내엔 60~70명 정도의 프로스포츠 통역이 활동 중이다. 정재균(33) 대한항공은 통역은 이 중에서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일반적인 통역사들과 다르게 영어 전공자가 아니다. 심지어 문과생도 아닌 건설시스템공학을 전공한 ‘공대’ 출신이다. 그렇다고 유학을 가거나 해외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것도 아니다. 어학연수 1년을 다녀온 것이 전부다. 군복무를 마친 뒤 영어공부에 몰입했고, 대학 졸업 후 배구단 통역으로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그를 제외하고, 20대 중반 영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통역 일을 하는 이는 없다. 경기 용인 신갈 대한항공연수원에서 만난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정재균 통역은 “비전공자이기도 하고 해외 생활 경험도 없어서 스스로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대학 생활 동안 통역 봉사활동을 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나면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우연히 배구단 통역 지원공고를 보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해서 스포츠 통역 생활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배구 한국전력과 KB손해보험 외국인 선수 통역으로 일한 그는 2018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와 자카르라-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배구대표팀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야구계로 옮겨 SK 와이번스에서 제이미 로맥(35)의 전담 통역으로 활약했다. SK와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엔 다시 배구계로 돌아와 대한항공에서 로베르트 산틸리(55) 감독과 프란체스코 올레니(44) 코치 통역을 맡고 있다. 정재균 통역은 스포츠 통역을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전지적 참견 시점’에 등장하는 연예인 매니저에 비유했다. “외국인 선수들에겐 통역이 마음 편히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스포츠 통역은 옆에서 친구 노릇도 해주고 대중들이 흔히 아는 연예인 매니저처럼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술친구, 운전기사, 관광가이드, 훈련도우미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선수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게 통역이다”라고 밝혔다.

정재균 통역이 프란체스코 올레니 대한항공 코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민환 기자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통역은 언어 능력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도가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의 입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샤론 최도 직접 영화를 제작해본 영화인이었기에 훌륭한 통역이 될 수 있었다. 

스포츠 통역도 경기 도중 급박한 상황에서 빠르고, 외국인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쏟아내는 전문용어를 바로 이해하고 정확하게 통역을 해야 하므로 스포츠에 대한 지식은 필수다. 정재균 통역은 “언어 능력이 1순위이지만, 이 직업을 하기 위해선 스포츠 지식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TV 중계를 볼 때 쓰는 언어와 현장에서 쓰는 언어가 다르다. 스포츠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어야 올바르게 통역해 원활한 소통을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사소통을 원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 순간적으로 잘 파악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사람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정재균 통역은 “외국인 선수들은 낯선 한국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통역이 먼저 다가가서 선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 있게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균 통역. /임묀환 기자

프로스포츠 통역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어서 고용이 불안정하다. 보수가 높은 편도 아니다. 시즌이 시작되면 훈련과 경기가 많고 외국인 선수 관리를 전담하기에 개인 시간이 부족하다. 아예 숙소에서 외국인 선수와 같이 생활하기도 한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고된 직업이다. 정재균 통역은 “선수와 같은 삶은 산다고 보면 된다. 매년 계약을 해야 해서 불안정한 직업인 건 사실이다. 모든 팀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팀 성적에 영향을 받을 때도 있다. 당장 앞날을 알 수 없다는 게 이 직업의 단점이다. 개인 시간도 부족하다. 통역은 선수 출신보다 일반인이 많은데 처음엔 이런 점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다. 화려한 면만 보고 들어오면 오래 버티기 힘들다”라고 전했다. 

정재균 통역도 주변에서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으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스포츠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이 일을 시작한 그는 스포츠 통역 일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다. 정재균 통역은 “미래가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도 좋지만, 지금 이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 외국인 코칭스태프와 선수에게 최고의 통역이 되는 게 목표다. 또 앞으로 스포츠 산업에 종사하면서 국내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게 꿈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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