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政治&풀뿌리- 박지원 국정원장

 

누군가 뒤에서 껴안는다. 돌아보니 환한 얼굴의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이다. 아니 1994년 쯤의 일이니 ‘박지원 대변인’이라고 해야 맞겠다. 나한테만 특별한건가 돌아보니 누군가에는 어깨를 기대고, 또 다른 기자와는 악수를 한 채 대화한다.

‘정치인 박지원’은 정치권 입문시절부터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정치 초년병시절 국회의원이라고 ‘영감님’ 티를 내지 않았고, 보스와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공연히 힘을 과시하지 않았다.

2016년 국민의당 초선의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밥먹는 정치인은 정치인 자격이 없다. 정치를 하려면 삼시세끼 기자들과 먹으라”고 조언했다는데, 이는 본인이 실천해 온 정치여정이다.

박 내정자가 기자들을 가까이 했을 뿐 아니라 기자들도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살가운 성격뿐 아니라 기자들의 ‘일용할 양식’을 주는 능력도 탁월했으니 기자들에게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기억력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중앙지와 지방지, 종합지와 경제지, 1진과 3진에 맞는 정보를 대변인 명의와 익명으로 뿌려대는 솜씨는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민주당 대권후보로 부상한 이낙연 전 총리와 ‘대변인과 기자’로 만나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발전했을 뿐 아니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등 보수 인사들과도 통하는 엄청난 진폭의 친분을 자랑한다.

 

한 때 영어(囹圄)의 몸이 된 적도 있으나 인생 후반전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그의 관운은 선망의 대상이다.

4선 국회의원, 원내대표 3회, 당대표, 청와대 공보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두루 거쳤으며 무엇보다 권력의 정점에서 대한민국 정치를 디자인해 본 경험은 희귀하다.

특히 김대중(DJ)정부 최대 국정과제였던 남북관계에 ‘대북밀사’등의 역할로 깊숙이 발을 담갔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북한 고위층과 연계된 파이프라인을 형성했다.

알려진 대로 그는 한 쪽 눈을 실명해 의안이다. 또 정치풍랑을 겪으며 건강도 해쳐 쓸개를 제거했다.

올해 초 한 방송에 출연, “나는 (외눈으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보지만 (쓸개가 없어) 와신상담(臥薪嘗膽) 할 수는 없다”는 촌철살인으로 저열한 비난을 일삼는 상대를 멋쩍게 만들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재주를 가졌다는 평을 듣지만 한걸음 나아가 보고 싶은 것을 끌어내는 재주도 지녔다.

이런 재주가 용인(用人)의 귀재로 소문난 DJ의 마음을 수 십 년간 사로잡고, 정치적 대척점에 섰던 문재인 대통령의 낙점을 받은 자산이라 여겨진다.

또 자기논리를 대중화하는 탁월한 공감능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재주가 지나쳐 때때로 가벼운 처신으로 비난을 자초하는가하면 설화(舌禍)를 입기도 하는 점은 우려스럽다.

독보적인 경험과 경력 그리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통찰력이 경중과 우선을 가리는 경륜으로 피어나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와 미묘한 미국, 중국, 일본 관계를 풀어내길 기대한다.

추신: 여전히 호남지역 정치적 지분을 보유한 78세의 낙선거사는 국정원장에서 물러나도 현 집권당의 정권재창출에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내정에 따른 첫 반응이 충성이지 않은가!

 

김진호 부사장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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