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가대표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이 6월26일 22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동물의 세계에서 폭력은 생존을 위한 기본수단이다. 하지만 인간의 세계에서 폭력은 그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할 수 없다. 
 
6월 26일. 22살의 꽃다운 청춘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에게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은 생지옥이었다. 폭력과 폭언이 난무했고, 맞지 않으면 이상한 날일만큼 가혹한 일상이 계속됐다. 결국 고 최숙현은 죽음으로 자신이 겪은 부당함과 부조리를 세상에 알렸다. 살아 생전 선뜻 나서지 못했던 동료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고인의 동료들은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서 벌어진 추악한 진실을 공개했다. 
 
김규봉 감독과 무자격 운동처방사로 알려진 안주현,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출신 주장 장모 선수 등을 고인에 대한 가혹행위 가해자로 꼽은 동료 선수들(8명·기자회견 2명 참석)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폭행은 일과였다. 뺨을 때리고 발로 차고 야구방망이까지 들었다. 훈련장에서 손을 차 손가락이 부러지고 담배를 입에 물린 채 뺨을 때려 고막이 터진 이들도 있었다. 청소기, 쇠파이프 등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이 흉기가 됐다. 합숙훈련 중 맹장수술을 받은 이는 실밥도 풀지 못한 채 훈련을 하고 수영을 강요 받았다. 
 
더욱 악질적인 건 보복과 회유의 반복이다. 팀을 떠나려고 하면 동의서를 써 주지 않으려고 연락을 끊었고, 애써 팀을 옮겨도 경주시청 주장이 경기 중 때리고 보복을 가했다. 부조리가 알려지는 게 두려웠는지 외부인이나 다른 팀 동료와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게 했고,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목록, 메신저 내용을 검열하기도 했다. 금전갈취도 있었다. 항공료, 합숙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수백만 원씩 걷었고, 무자격 팀 닥터에게 돈을 낼 수 없다고 하면 주장 선수가 "투자로 생각하라"고 강요했다. 감독 못지않게 폭행을 일삼은 무자격 팀 닥터는 치료를 빙자해 가슴과 허벅지 등 특정 신체부위를 추행했고, 심리치료 중이던 최숙현에게는 극한으로 끌고 가 자살토록 하겠다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 김규봉(사진)이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에 참가해 "최숙현에 대한 폭력을 없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중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6일 최숙현 사망과 관련해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증인으로 나선 김규봉 감독과 주장 선수 등은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감독은 "폭행을 몰랐다. 관리감독 미흡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한다"고 했다. 주장 선수 역시 "폭행은 없다"면서 사과할 의향을 묻자 "가슴 아프나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했다. 또 다른 선배 김모 선수는 "죽음은 안타까우나 폭행은 하지 않았기에 미안함은 없다"는 말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숙현 사망 후 관련 부처는 물론이고 국회까지 나서 운동선수 인권 강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일벌백계를 부르짖으며 부랴부랴 쏟아져 나오는 대책들은 수박 겉핥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과거에도 그랬다. 역도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이 후배의 얼굴을 주먹과 발로 수 차례 때려 전치 6주의 부상을 입혔을 때도,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리스트 이승훈이 숙소와 식당 등에서 후배를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했을 때도, 조재범 성범죄 사태 때도 모두 같은 말이었다. "일벌백계로 체육계 폭력 뿌리를 뽑겠다."
 
최숙현 사태에도 일벌백계(一罰百戒)는 또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법과 제도, 신고센터가 없어서 최숙현 사태가 벌어진 게 아니다. 물론 미흡하다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권한을 강화해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체육 특유의 지도자와 선수 간 상하, 위계관계 청산과 성적 지상주의 탈피 없이는 제2, 제3의 최숙현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최숙현은 죽었지만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딸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의 통한과 용기 내지 못하고 방관했던 동료들의 죄책감은 평생 그들을 따라다닐 주홍글씨가 됐다. 최숙현의 사망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에야 말로 체육계의 폭력과 구타 근절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세워지고 엄격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시스템으로 정착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최숙현 사망 사태와 관련해 관계 부처의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체육계는 관행적으로 이어 온 낡고 후진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선수에 대한 가혹행위와 폭행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구시대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경찰과 협회, 대한체육회, 경주시청 등을 찾았으나 어디서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스포츠 인권을 위한 법과 제도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강조하며 관계 부처에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적이 현실화되기를 손꼽아 기대한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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