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용(왼쪽) 진천선수촌장과 정성숙 진천선수촌 부촌장은 한 목소리로 고 최숙현 사태와 관련해 감독이 폭력 상황을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 평창=임민환 기자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있지만 정작 때린 사람은 없다. 말장난이 아니다. 경주시청 소속이었던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최숙현 사망 사태와 관련해 감독 김규봉 씨와 주장 장윤정 그리고 또 다른 선배 선수 김모 씨가 한 주장이다. 이들은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상임위원회에 출석해 "폭력을 행사한 적 없으며 폭력이 자행된 사실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숨진 최숙현의 동료 선수 약 15명은 김규봉 씨와 무자격 팀 닥터 안주현 씨 그리고 주장 장윤정 등이 적극적으로 폭력에 가담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더구나 고인이 남긴 녹취록에도 이들의 폭행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음성과 폭력음이 가득하다. 김규봉 씨가 경주시청 감독으로 부임한 2013년부터 최근까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에 소속됐던 전·현직 선수는 27명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폭력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든다. 정말로 감독은 최숙현이 매 맞는 사실을 몰랐을 수 있을까.   
 
4차례나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면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을 수확하고 프로배구 삼성화재 배구단 단장, 제일기획 스포츠구단 부사장 등을 역임한 신치용 진천선수촌장과 1996년 세계선수권 여자유도 금메달리스트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유도 63kg급에서 잇달아 동메달을 목에 건 뒤 용인대 교수와 대한유도회 및 대한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한 정성숙 진천선수촌 부촌장에게 물었다. "정말로 감독 모르게 선수 폭행이 가능한가." 
 

최숙현 사망 사태와 관련해 폭행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 주장 선수 그리고 또 다른 선배 김모 씨(왼쪽부터)가 6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 상임위에 출석해 관련 진술을 하고 있다.

6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평창국가대표선수촌 건립부지서 열린 '평창국가대표선수촌 건립 및 동계올림픽 유산확산 비전선포식'에서 만난 신 촌장은 단호하게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신 촌장은 "감독 모르게 자행되는 폭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감독은 직접 보지 못했더라도 맞는 소리를 듣던가 선수의 이상 행동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말로 몰랐다면 감독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일갈했다. 

정 부촌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제 고향이 경주다. 저도 30년 넘게 운동 선수로 생활을 했지만 감독이 선수 폭행 사실을 몰랐다는 말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감독이 자기 선수를 지켜주지 못하고 팀 닥터라고 주장하는 무자격자가 선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걸 눈 감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자격자가 실업팀의 팀 닥터로 어떻게 일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신 촌장과 정 부촌장은 "흔하지는 않지만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 촌장은 "선수 개인적으로 근육 피로 등을 풀거나 몸 관리 차원에서 민간 병원 등을 찾는다. 이후 진료를 잘 본다거나 등 입소문이 나기도 하는데 훈련 후 그런 사람에게 진료나 마사지 등을 맡길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 끝에 경주시청에서 일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대적 위치에서 선수를 폭행하는 팀 닥터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 부촌장은 "선수단을 총괄하는 감독이 팀 닥터보다 우위에 있는 위치다. 그런데도 팀 닥터가 권한을 넘어서 폭력을 행사한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 최숙현이 생전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신 촌장과 정 부촌장은 생지옥과 다름 없었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이 "비정상적"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신 촌장은 "때린다고 해서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 바짝 상승할 순 있어도 길게 보면 선수 기량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선수가 기량이 올라오지 않으면 시간을 주고 출전 명단에서 빼주면 된다. 선수 스스로 기량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부촌장 또한 "유도야 말로 위계가 센 종목 중 하나지만 때린다고 해서 기량이 오르는 건 아니다"라면서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폭력을 휘두른다는 건 지도자나 선수로서 모든 커리어를 버리는 것과 같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운동하면 으레 맞는다'는 건 잘못된 인식이다. 학원스포츠도 그렇고 성인도 그렇고 폭력이 설 자리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제2, 제3의 최숙현 사태를 막기 위한 해법으로 '소통'을 제시했다. 신 촌장은 "선수가 자신에게 행해지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적극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와 시대정신에 맞게 상호 존중할 수 있는 문화가 뿌리 내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 부촌장 또한 "선수들이 편안하고 안정적이며 안전하게 훈련하기 위해선 소통이 중요하다"면서 "검찰 수사 등 결론이 나면 관련자들에 대해 영구제명 등 강도 높은 징계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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