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체육계 '라떼는 말이야' 현실이 된 순간
멈춘 미래의 꿈과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고 최숙현의 동료들(오른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이 7일 기자회견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글렌다박 기자] 예체능계는 유독 도제식으로 배움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분야는 무형문화재, 음악 (기악, 작곡, 이론, 음향 기술 외), 미용, 디자인, 그리고 체육이다. 특히 체육특기생의 경우 입문부터 철저하게 지도자의 말을 맹신하여 따르게 된다. 단체로 훈련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암묵적으로 집단의 압력을 느껴 규범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동조 효과’로 인해 말도 안 되는 힘든 훈련에 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느 정도 성징이 발달하여 자신의 자아가 형성되었을 땐,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계속 선수로서의 진로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故 최숙현 선수의 사망 사건으로 인해 대중과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체육계의 많은 선수는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을 나타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 선수가 사망하기 전 대한체육회, 협회 등 6개의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외면했다. '지도자가, 팀닥터가, 선배 선수가 때린다. 폭언한다. 괴롭힌다.' 어쩌면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들이라면 너무 흔히, 일상처럼 겪는 평범한 일이기에 관련 기관에서도 그의 마지막 희망을 깃털처럼 가볍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故 최숙현 선수의 사망은 비단 체육계만의 일이 아니다. 그녀의 사망 원인엔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인간관계에서 신의를 무너뜨리는 일이 있었다. 故 최숙현 선수는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 달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파헤치고 있고, 곧 진실을 밝힐 것으로 생각한다. 최 선수가 진짜 희망한 쇄신된 체육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먼저 기본적인 환경 개선이다. 필자는 북미 유학 경험이 있다. 캐나다 토론토 소재지의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두 가지 환경이 있다. 하나는 학생이 절대 학교 미화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순번을 정해 학교 청소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창문도 닦고, 칠판도 닦지 않는가. 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의 학교에서는 공립이든 사립이든 교내 청소부가 존재하고, 청소는 절대 하지 않는다.

또한, 교사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생과 같이 퇴근한다. 교사에 따라 가끔 다를 수도 있는데 공식적인 학교 수업이 끝나고 30분 이상 머무는 이는 없었다. 한국의 교사는 학교 행정, 공문 등의 처리를 위해 평균 오후 6~7시에 퇴근하는데, 북미의 교사는 수업 준비, 채점밖에 하지 않는다. 학생이 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교내의 상담 교사나 교감, 교장이 직접 상담한다. 담임교사는 학생들과 상담하지 않는다. 교사는 그 방향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 역시 교무실에서 '행정 직원'이 한다.

교사는 본분인 ‘교육’, 학생은 본분인 ‘공부’만 할 수 있도록 최선의 환경을 제공한다. 엘리트 선수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실업팀 선수들의 환경은 다르다. 앞서 말한 ‘본분’을 유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대회에 나가 입상하는 것, 기록을 경신하는 것,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등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기본적으로 제공 받는 것은 그 어떤 부분보다 더 중요하다.

체육계 인식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제가 맞겠습니다.” 최 선수 녹취록을 듣는데, 이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고였다. 팀닥터가 동료 선수들을 모아놓고 때리기 시작하자, 놀란 최 선수가 외마디를 던진 것이었다. 사건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고, 갑자기 터진 것도 아니다. 곪아가고 있던 상처가 피고름이 나며 터졌다. 썩어 고여 있던 물이 악취를 내더니 결국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묵인한 사람이 여럿이기에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할 사람은 배로 늘어난다. 사죄해야 할 사람이 배로 늘어나기에 반성해야 할 사람은 그의 배로 늘어난다.

달리는 경주마를 더 빨리 달리게 하려 채찍질하면 그 순간에는 잠시 속도가 빨라질지 몰라도 경주마의 무릎을 비롯한 몸 전체엔 무리가 가며 경주마로서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든다. 이것은 스포츠 선수도 마찬가지이다. 훈련과 목표 달성에 대한 미흡함을 폭행과 폭력으로 맞선다면 선수는 공포와 압박감으로 인해 그 순간엔 잠시나마 무언갈 ‘해내는 듯’ 보여도 선수는 경주마와 달리 존엄한 인격을 지닌 ‘인간’이기에 정신은 피폐해지고, 선수로서의 수명은 점점 줄어든다.

‘나 때는 너보다 더….’, ‘나 때도 그랬어….’. ‘나 때는 말이야….’ 이 ‘나 때’ 등장하는 ‘말’이 현실에서 뛰놀게 될 때, 가장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의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선후배 문화, 성과주의로 인해 폭력이 만연했던 훈련 문화를 지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는 현시점에 와이파이도 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거나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면 터지지 않는 2G폰을 지도자가 들고서 ‘나는 이걸 쓸 거야!’라고 고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린 이즈음에서 어떻게 외국의 선수들이 훈련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리오넬 메시, 타이거 우즈, 마이클 펠프스, 라파엘 나달, 조코비치, 엘리우드 킵초게 등의 각 분야 최고의 외국 선수들이 과연 ‘맞아가며’ 훈련했을까? 그들이 훈련을 못 할 때마다 그들의 코치가 그들을 따라다니며 ‘폭언’을 퍼부었을까? 아니면 그들도 선후배의 위계질서를 지키며 어린 시절부터 선배들에게 ‘물 떠오기’를 했을까? 국내 체육계에서 선후배 간의 악 폐습으로 남아있는 군기 문화는 없어져야 할 것이며, ‘폭력’과 ‘폭언’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대표를 꿈꿔왔지만 여러 다른 이유로 결국 선수 생활을 그만둔 여러 이들을 보았다. 故 최숙현 선수. 그의 나이 스물두 살,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나이다. 그는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포기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버텼다. 그리고 죽음과 함께 우리에게 숙제를 남겼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6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故 최숙현 선수를 폭행·폭언한 혐의로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 선수를 영구제명하였고, 가혹 행위에 가담한 김도환 선수에겐 자격정지 10년의 징계를 내렸다. 최 선수의 마지막 유언을 위한 심판이 시작되었고, 한 손 한 손, 변화를 기대하는 손길이 모이고 있다. 故 최숙현 선수에게 피로 빚진 체육계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렌다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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