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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고예인 기자] 9일 돌연 실종돼 경찰이 소재 파악에 나선 가운데 그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박 시장은 세 차례 걸쳐 서울시장에 당선된 인물로 여권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도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기본소득과 부동산 정책 등 이슈를 주도하며 대선으로 가는 길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그러나 이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현직 시장이 실종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부유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고(故)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제적을 당했다.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국제법을 수학한 박 시장은 한국에 돌아와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결국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 사형 집행 장면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사표를 낸다.

이후로는 상당기간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다. 민주화 운동에도 한복판에 섰다. 이후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부정부패 혐의로 얼룩진 정치인들을 낙선시키자며 운동을 전개했고 대상자 86명을 명단으로 발표해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2000년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가게도 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직장내 성희롱 풍토의 시선을 바꾼 유명한 일화다.

박 시장은 1995년부터 보폭을 넓혀 국내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으로 활약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부정부패 혐의로 얼룩진 정치인들을 낙선시키자며 운동을 전개했고 대상자 86명을 명단으로 발표, 총선을 앞둔 정치권을 뒤흔들기도 했다.

그런 그는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된 서울시 사령탑의 후보로 급부상했다. 이후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양보로 단일화에 성공한 뒤 야권의 단일후보로 당선에 성공한다.

이후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으로서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원전하나줄이기, 노동이사제, 토건에서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수많은 사회혁신정책을 단행했다.

더 큰 꿈을 키워가던 그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중도포기하는 시련도 겪었다. 그러나 서울시 최초 3선 시장 고지에 오르면서 여전히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로서 입지를 넓혀왔다.

고예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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