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지훈-한화 강재민-KT 천성호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프로야구 신인 10명 중 9명은 대졸이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고교야구에서 활약한 유망주들의 대학 진학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대학을 거친 뒤 프로에 입단하는 것이 ‘엘리트 코스’로 통했다. 역대 신인왕을 살펴봐도 1990년대까진 대졸이 ‘대세’였다. 1999년까지 신인왕(원년인 1982년은 제외) 17명 중 대졸이 13명이다.

그러나 1996년부터 연고지 내 고졸 선수 3명을 뽑는 고졸 우선 지명이 생기면서 고졸 루키들이 프로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고졸이 주류가 됐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20명의 신인왕 중 고졸이 무려 16명이다. 

KBO리그 팀들은 3~4살 많은 대졸 선수보다 어린 고졸 유망주를 일찍 프로에 데려와 키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고교 유망주들이 대학 진학 대신 프로 직행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대학야구의 수준 하락으로 이어졌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졸 선수가 찬밥 신세가 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2016년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96명 중 대졸이 38명이지만, 2017년엔 96명 중 23명, 2018년엔 99명 중 18명, 2019년엔 94명 중 20명이다. 지난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고사위기에 빠진 대학야구를 살리고자 2차 신인드래프트에서 대졸을 구단마다 1명 이상 지명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까지 도입했으나 2020년에도 97명 중 대졸은 18명에 그쳤다. 최근 3년간 1차 지명을 받은 대졸은 2018년 삼성 라이온즈 최채흥(당시 한양대), 2019년 LG 트윈스 이정용(당시 동아대) 둘뿐이다. 2차 1라운드 지명자는 대졸은 단 한 명도 없다.

올해도 소형준(KT 위즈), 이민호(LG), 허윤동(이상 19ㆍ삼성 라이온즈) 등 고졸 신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시즌 초반 신인왕 레이스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대졸인 SK 와이번스 외야수 최지훈, KT 내야수 천성호, 한화 이글스 투수 강재민(이상 23)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며 프로 진출을 꿈꾸는 대학야구 선수들에게 희망을 던졌다.

‘제2의 김강민’으로 불리는 최지훈은 SK 외야의 미래로 꼽힌다. 11일 경기까지 올 시즌 42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7 4타점 16득점 4도루 OPS 0.695를 기록 중이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당찬 신인으로 일찌감치 눈도장을 받은 그는 올해 SK의 리드오프를 꿰차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컨택트 능력이 좋고, 빠른 발도 자랑한다. 넓은 수비범위와 강한 어깨를 갖춰 차세대 중견수로 기대를 모은다. 최지훈은 올 시즌 전 “최근 대졸 선수들이 저평가 받고 있는데 대학 출신 선수들도 프로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대졸 중 가장 빠른 순번에 지명된 천성호도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2루수, 3루수, 유격수를 두루 소화하며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이강철(54) KT 감독은 "백업으로 잘 해주다가 1∼2년이 지나면 주전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천성호와 단국대 동기인 강재민은 뒤늦게 1군에 올라와 불펜 투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대학야구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였던 그는 11일까지 7경기에서 9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0을 기록 중이다. 정교한 제구를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투구로 한화 불펜의 희망으로 자리매김 했다. 신인답지 않은 칼날 제구와 두둑한 배짱이 강재민의 매력이다. 그는 “대학야구가 과거보다 관심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인데 대졸 동기들이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보인다면 대학야구도 다시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항상 생각하는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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