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한철인3종협회 정기대의원총회 회의록 캡처.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무능의 극치다. 대한철인3종(트라이애슬론)협회가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돼 고(故) 최숙현의 죽음을 막을 기회를 흘려보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3일 협회 홈페이지의 2020년 정기대의원총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고 최숙현 사건의 핵심 가해자로 지목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주장 장윤정의 이름이 5차례 등장한다. 총회는 2월 14일 열렸다. 고 최숙현은 총회가 열리기 전인 같은 달 6일 경주시청에 피해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냈다.

협회는 총회에서 총 14건의 안건을 상정하고도 고 최숙현 관련 안건은 상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된 장윤정 등의 사기를 복돋우려고 ‘올림픽 출전권 획득 시 선수에게 1000만 원, 해당 선수의 지도자에게는 5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는 안건을 논의했다.

일각에선 협회는 대의원총회가 열리기 전에 고 최숙현이 가혹행위 피해를 호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중에 도쿄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큰 장윤정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협회에게는 고 최숙현 관련 사건 조사보다는 올림픽 출전권 획득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협회가 고 최숙현 사건을 가볍게 판단하고 사실상 방관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날 협회는 ‘지도자 스포츠폭력사건 경과’를 보고한 자리에서 미성년 선수를 성희롱하고 성추행한 체육고등학교 감독을 영구제명하기로 한 스포츠공정위 심의 결과를 전했다. 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는 2019년 9월 25일 미성년 선수를 성희롱, 성추행한 감독에게 영구제명 징계를 결정했다. 협회는 당시 가해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수준 징계를 내렸다.

성추행 감독을 영구제명한 것과 관련해 회의록에 ‘성폭력은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까지 했다. 그러나 협회는 지도자, 선배들에게 가혹 행위를 당하고 있다는 고 최숙현의 호소에도 가해자 김규봉 감독에게만 사실을 확인한 뒤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앞서 비슷한 사건을 거울삼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4개월 뒤 고 최숙현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결국, 협회는 고 최숙현이 세상을 떠난 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지난 6월 스포츠공정위를 다시 열고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을 영구제명했다. 또 다른 가해자 김도환에겐 자격정지 10년 징계를 내렸다. 늦어도 한참 늦은 ‘뒷북’ 행정이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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