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부산행’의 속편으로 익히 알려진 ‘반도’(15일 개봉)는 사실 상 전작과 별개의 영화다. ‘부산행 후 4년’이라는 설정과 좀비물이라는 장르만 같을 뿐 새로운 캐릭터들과 새 세계관이 펼쳐진다. ‘부산행’을 보지 않은 관객이 봐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딱히 연결고리는 없다. 두 작품을 굳이 비교해서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반도’는 ‘부산행’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사투를 그린다. 좀비가 휩쓸고 간 폐허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전대미문이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강동원)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정석은 좀비들에게 누나와 조카를 잃은 인물이다. 정석과 함께 살아남은 매형은 삶의 끝자락에서 결국 가족을 포기해버린 정석을 원망한다. 정석 역시 가족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아간다.

영화 '반도' 리뷰.

지옥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은 정석은 어느 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돈이 가득 들어 있는 트럭이 한반도에 있다는 것.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 나와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정석은 위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뜻밖의 어린 소녀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의 도움을 받게 된다. 소녀들의 엄마는 다름 아닌 민정(이정현). 민정은 4년 전 정석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인물이다. 정석은 자신이 외면했던 민정을 다시 재회하며 또 한 번 죄책감을 느낀다.

정석은 민정과 함께 돈이든 트럭을 찾으러 가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 소대장 황중사(김민재)와 서대위(구교환)와 대립하게 된다. 적들의 공격과 좀비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정석과 민정 무리는 오로지 생존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반도’는 절망으로 가득한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한국 땅을 그리며 ‘부산행’보다 훨씬 어두운 전개를 띤다. ‘부산행’에서는 곳곳에 오락적인 요소가 배치돼 있었지만 ‘반도’는 시종일관 어두운 세계관이 돋보인다. 인간의 가장 악하고 약한 모습을 파고들며 진정한 ‘인간성’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국내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디스토피아 세계관이지만 깊이가 아쉽다. 상업적인 연출과 작가주의, 그 어딘가에서 고민한 흔적이 오롯이 엿보인다. 여느 좀비물에서 늘 봐왔던 진부한 캐릭터들과 클리셰 역시 존재한다.

시원한 카체이싱 장면과 액션 스케일은 가히 볼만하다. 준이의 카체이싱 장면은 4DX에서 훨씬 실감나게 구현된다. 관객에게 남다른 체험감을 선사하며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한다. 한층 빨라진 좀비들의 공격 역시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스토리적 면에서 봤을 때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절망으로 시작해 희망으로 급하게 마무리되는 지루한 엔딩 역시 이렇다 할 흥미를 주지 못한다.

그 와중에 영화를 빛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눈길을 끈다. 여성 주인공 이정현과 이레는 기존의 좀비물 속 구원을 바라는 여성 캐릭터에서 벗어난 진일보된 연기를 펼친다. 구원을 바라는 대상이 아닌 구원하는 사람으로 분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꿈의 제인’ ‘메기’ 등 독립영화의 스타로 꼽히는 구교환의 독특한 캐릭터 소화력 역시 신의 한 수다. 러닝타임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사진=NEW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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