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부와 현대차, 협력 바램에도 냉기류 여전
지적재산권 놓고 첨예한 대립에 상반된 입장
LG화학은 지난달 29일 자사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기술 유출 방지법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고혜진 기자] 최근 재계 총수들의 회동으로 K-배터리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경찰에 고발했다. 양사 분쟁은 영업 비밀 침해와 인력 유출 등 내부 이견이 기업 간 갈등으로 불거지면서 K-배터리 동맹 관계도 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현대차가 중재자 역할로 나섰지만 지적재산권을 놓고 펼치고 있는 첨예한 대립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달 말 자사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기술 유출 방지법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산업 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 비밀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지난해 LG화학은 같은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1년여 만에 소송 공방전이 재차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소송전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5명에 대해 영업 비밀 유출 혐의로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바 있다. 이에 지난해 1월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갈등 재점화는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법적 공방이 이어지며 본격화됐다.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 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 역시 이의를 제기했으나 올해 2월 ITC는 SK이노베이션에게 조기 패소 예비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오는 10월 내려질 최종 판결에 LG화학이 일단 우세하다는 평이다. 통상 ITC의 예비 판결은 번복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LG화학의 고소 배경에 의문을 가지고 소장을 제출할 필요가 있냐는 반응도 존재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은 이미 고소한 지 1년이 넘은 사건으로 신속하게 사실관계만 규명해달라는 취지”라며 “검찰에 의견서 접수하는 절차가 현실적으로 없어 고소장 형식으로만 진행했고 정확하게 말하면 경찰에 고소한 사건”이라고 답했다.

SK이노베이션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어떤 대응을 취할지 현재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일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5월 LG화학의 경찰 고소에 대응해 LG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한편 K-배터리 동맹이 현실적으로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최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삼성과 LG, SK 총수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전기차와 배터리업체들이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시장상황은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글로벌 최고의 배터리 3사가 한국 기업인 것이 자랑스럽다”며 “서로 잘 협력해 세계 시장 경쟁에 앞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한국판 뉴딜의 성공 여부는 속도에 달렸다”며 “이해관계 충돌을 예상해 선제적으로 조정해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과 현대차의 기대감과는 달리 관련 업체들의 반응은 상반된 입장이다. 배터리 사업의 주도권을 국가적 차원에서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사실상 '배터리 동맹이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은 리버스엔지니어링(정식 제품을 분해, 기술을 파악해 재현하는 행위)이 되지 않는다”며 “부품 조합과 배합은 각 사 전문가도 모르는 세심한 산업인데 타사와 협력이 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도 꼬집었다. 그는 “현재 K-배터리라고 해서 배터리 업계들이 떠오르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며 “지난 2016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상황에 중국 정부는 국내 업체의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 보조금을 제외하면서 국내 업체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지만 당시 정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은 각자의 지적재산권을 위해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한다”며 “배터리 하나를 만드려면 상당한 노력과 투자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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