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국회로 간 팀킴의 '뼈 때리는' 호소
[기자의 눈] 국회로 간 팀킴의 '뼈 때리는' 호소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0.07.22 16:40
  • 수정 2020-07-22 17:00
  • 댓글 0

20일 국회에서 고 최숙현 사건에 대한 호소문을 낭독 중인 '팀킴' 주장 김은정(오른쪽 네번째) 모습.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박대웅 기자] "1년 8개월 전 우리가 세상에 공개했던 부당한 일들과 최근 세상을 떠난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사례가 유사합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팀킴 사태, 트라이애슬론 폭행 사건이 또 일어날 것입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은메달을 땄던 전 국가대표팀 '팀킴(Team Kim)'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고 최숙현 사건에 대한 호소문을 낭독했다. 팀킴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 힘들어했던 저희처럼 생전 고 최숙현 선수와 피해 선수들도 신고 후 개선되지 않고 묵인된 현실에 불안하고 상처받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킵(주장) 김은정을 비롯해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 김초희로 구성된 팀킴은 2018년 11월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 등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대구지검은 지난해 9월 민간지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김 전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은정은 "김민정 경북체육회 감독(김 전 부회장의 딸)은 2019년 면직 당했으나 소송을 진행하면서 금년까지 경북체육회 이사로 등록돼 있었고, 김 전 부회장과 장반석 경북체육회 감독(김 전 부회장 사위)에 대해 경북체육회의 징계도 이뤄진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북체육회 직원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문체부 감사 결과 62건 중 6건 이상의 징계와 사법 조치 권고를 받은 A부장은 당시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저희를 관리했다"면서 "그 부장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2개월 정직 징계를 받고 나서 다시 컬링 팀을 관리하는 체육진흥부장으로 복직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사건이 생기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 스포츠는 메달을 향한 무한질주로 비친다. 운동선수는 올림픽 메달을 따 국위를 선양해야 살아남고, 각종 대회 메달을 쥐어야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승리 지상주의는 과열 경쟁을 낳고 때려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 된다는 인식을 낳았다. 운동선수는 공부를 안 시켜도, 폭력과 같은 인권유린이 자행되어도 쉽게 용서된 이유이기도 하다. 성적은 운동선수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고용 불안을 호소하는 지도자들 역시 대부분 성과급제의 비정규직인 만큼 성적에 목숨을 걸게 된다. 시스템과 제도가 지도자의 폭력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폭력이 선수 기량과 성적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4차례나 국가대표팀을 지휘했고, 프로배구 삼성화재 왕조를 건설했던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때린다고 해서 경기력이 올라 오지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 바짝 상승할 순 있어도 길게 보면 선수 기량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면서 "선수가 기량이 올라오지 않으면 시간을 주고 출전 명단에서 빼 주면 된다. 선수 스스로 기량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재범 성범죄부터 고 최숙현 사태까지. 일련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이 모든 적폐의 밑바닥에 스포츠가 국위선양과 애국심 고취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도록 한 국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가는 올림픽과 같은 메가 이벤트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고, 체육계는 메달과 성적으로 보답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인권유린이 묵인됐고, 승부조작과 입시부정과 같은 비리도 끼어들었다. 빙상연맹과 경북체육회 등 각종 체육단체는 권력을 사유화하고 특정 지도자들의 횡포 또한 자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만 좋으면 과정은 은폐됐고 은근슬쩍 넘어갔다. 
 

이제 이런 매커니즘에 철퇴를 가해야 하지만 켜켜이 쌓인 체육계 적폐를 체육계 스스로 정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초 조재범 성범죄 사건으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을 지향하는 체육계 개혁을 지시했다. 문체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까지 구성해 물리적 가해뿐만 아니라 그런 범죄가 상시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체육계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소리쳤다. 1년의 활동기간 동안 7권의 권고안을 남겼지만 혁신위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혁신위 해단 6개월여 만에 스무두 살 꽃다운 청춘은 스스로 생기를 잃었고, 그의 손을 잡아줬어야 할 '스포츠윤리센터'는 혁신위 권고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최숙현의 유언이 더 비통한 이유다. 
 
스포츠윤리센터는 다음 달 출범한다. 하지만 수사권과 조사 강제 권한이 없다. 최숙현 사망 이후 문체부는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사법경찰직무법을 개정해야 한다. 애초 스포츠혁신위는 스포츠윤리센터를 독립성과 수사 기능을 갖춘 기구로 설계했다. 그러나 윤리센터 설립의 근거가 되는 '운동선수 보호법'이 통과되고 센터가 설립하는 과정에서 '반쪽짜리'가 됐다. 이제라도 혁신위의 애초 권고처럼 수사권과 강제력을 갖춘 독립된 기관으로 스포츠윤리센터를 되돌려 놔야 한다. 그래야만 제2의 심석희, 최숙현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다. 그래야 국회로 간 팀킴의 '뼈 때리는' 호소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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