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다박의 이너뷰] 미국 전문의가 되기 위해 달리는 국내 엘리트 전문의 무한도전기 ①
[글렌다박의 이너뷰] 미국 전문의가 되기 위해 달리는 국내 엘리트 전문의 무한도전기 ①
  • 글렌다박 기자
  • 승인 2020.07.30 09:00
  • 수정 2020-08-03 08:15
  • 댓글 0

이희영 전문의가 2020 7월 1년간 전임의 과정을 마치며 수료패를 받고 찍은 기념사진. /이희영 씨 제공
이희영 전문의가 2020 7월 1년간 전임의 과정을 마치며 수료패를 받고 찍은 기념사진. /이희영 씨 제공

[한국스포츠경제=글렌다박 기자] 대학병원에는 같은 과 안에서도 분야가 또다시 세분화 되어 여러 교수가 각각의 분야를 맡게 된다. 이렇듯 ‘세부 전공’을 지닌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청춘’을 다 바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과대학 6년, 수련의 1년, 몇몇 과를 제외한 대부분 과목은 전공의 4년이 지난 후에 전문의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 남성의 경우엔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후에 군의관 등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예도 있지만, 전문의 시험 전에 현역병이나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마치면 전문의를 보기 전까지 걸리는 시간은 훨씬 더 늘어난다. 전문의가 된 후에도 끝이 아니다. 전공과마다 다르지만, 전문의는 세부 전공을 위해 전임의로서 3년간 수련한다. 평균 14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번에 소개할 이희영 선생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재원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형외과를 전공했다. 공중보건의로서 강원도 화천군 보건의료원에서 정형외과장으로 3년간 복무했으며, 지난 5년간은 창원의 종합병원인 파티마병원의 정형외과 봉직의 등을 역임하며 수술과 진료 경력을 쌓았다. 정형외과 전문의로서는 전혀 아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던 그는 작년 이맘때쯤 한국에서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연고도 없는, 언어도 서투른, 낯설기만 한 나라였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중학교 3학년 시절 이희영 선생은 외국어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저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명덕외국어고등학교(이하 명덕외고)에 진학했다. 명덕외고 2학년 말까지 그는 법대를 지망하던 문과생이었다.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그렇듯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착실하게 준비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막연히 법대 진학을 꿈꾸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진로를 180도로 틀어버리는 계기가 찾아왔다. 바로 아버지의 사고였다.

2층 높이 지붕에서 큰 스티로폼 판을 들고 일하다가 갑작스러운 돌풍에 밀려 떨어진 아버지의 허벅지에 PVC 파이프가 관통했다. 2층에서 추락하며 머리나 척추가 다친 것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며 애써 서로를 위로했지만, 처음으로 겪는 큰 사건이었다. 감성적인 고등학교 2학년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이희영 선생은 아버지가 ‘별것 아니니 문병도 오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지만, 입원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결국 자신도 모르게 병원으로 발걸음이 향해졌다. 그리고 차마 볼 수 없었던 광경을 목격했다.

면도도 못 한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 "괜찮다." 하셨다.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는 관통상이 허벅지의 주요 뼈와 신경, 혈관은 비켜 갔지만, 심부 감염을 일으키며 관통당한 구멍을 통해 고름이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었다. 항상 건강했던 아버지가 입원하여 고통을 겪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가족은 물론 이희영 선생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부 감염에 의한 고름이 멈추지 않고 치료 기간이 길어지자, 아버지는 당신의 초등학교 동창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의 친구는 당시 세브란스 병원의 흉부외과 심장 수술 전문 교수였다. 아버지는 퇴원하였고 아침마다 친구의 진료실을 방문하여 직접 소독, 봉합을 받았다. 그리고 후에 다행히 별다른 후유증 없이 완쾌하여 직장으로 복귀하였다.

1999년 3월 연세대 1학년 당시 학생증. /이희영 씨 제공
1999년 3월 연세대 1학년 당시 학생증. /이희영 씨 제공

이희영 선생은 이 사고와 아버지의 치료 과정을 보면서 처음으로 ‘의사’라는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였다. 문과에서 이과로 전향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친구를 떠올렸다. 이희영 선생 역시 자신의 가족, 친구, 이웃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도움을 직접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막연한 무언가’에서 ‘뚜렷한 목표’가 세워지자 추진력이 생겼다. 고민 없이 이과로 전향했고, 이듬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하여 진학했다.

전문의로서 그의 1지망은 흉부외과와 정형외과였다. 흉부외과는 당연히 아버지의 사고가 났을 당시 도움을 청했을 때 달려와 주셨던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정형외과는 아버지가 다친 것이 정형외과 영역이었고, 이희영 선생 역시 여러 가지 스포츠를 좋아하여 잔 부상으로 인해 정형외과를 자주 다녀 정형외과가 낯설지 않은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흉부외과 실습 이후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정형외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본과 4학년 흉부외과 심장 수술 실습 당시 퍼덕퍼덕 뛰는 심장을 처음 보았습니다. 심장을 세우지 않고 뛰는 상태로 하는 관상동맥 수술, 심장을 잠시 멈추고 열어서 하는 심장 판막 수술 등 여러 가지 놀라운 수술을 보면서 경외심이 들었어요.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분야이다 보니 중환자실에서 안타깝게 사망하는 환자를 보는 것이 아주 힘들었습니다. 정말 멋있는 분야이고 꼭 필요한 분야이지만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이희영 선생은 올해로 9년 차 정형외과 전문의다. 정형외과도 내과나 외과처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분야가 다양하다. 스포츠를 비롯해 척추, 인공관절, 외상학, 손손복, 어깨팔꿈치, 발발목, 소아, 종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희영 선생의 세부 전공인 스포츠 의학은 신체 부위로는 무릎과 어깨 그리고 발목 순서로 많은 환자를 보고 수술 방법으로는 주로 관절경으로 수술하는 분야이다. 한국에서는 ‘관절경외과’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미국은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학교 체육은 물론 생활체육 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나라이다. 특히, 인기 있는 미식축구의 경우, 웬만한 고등학교 팀에도 감독, 코치뿐 아니라 전담 트레이너나 팀닥터까지 상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형외과만 스포츠 분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학과와 재학의학과에도 스포츠 분과가 따로 있고 ‘서티파이드 애슬레틱 트레이너(Certified athletic Trainer)’라는 직종의 사람들도 경기장뿐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희영 선생은 국내에서 정형외과 봉직의 시절 ‘스포츠 의학’이란 단어에서 왜 하필 ‘스포츠’를 붙이게 되었는지 가끔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본고장인 미국에서 전임의 과정을 하면서 ‘스포츠 의학’이라는 단어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넓은 스포츠 저변에 맞게 ‘스포츠 의학’이라는 분야가 존재하고 ‘스포츠’ 분야를 가장 잘 표현하는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희영 선생은 반월상 연골 파열, 전방십자인대 재건 수술, 어깨 탈골 수술, 팔꿈치 인대 수술 등 스포츠 부상에서 오는 손상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한다. 그러나 중년 환자의 연골판 파열, 퇴행성 질환 등도 치료하기에 ‘스포츠 의학’은 타 분과와 비교하면 범위가 넓은 전공이라고 할 수 있다.

不惑(불혹). <논어>에서 공자는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라고 표현을 했다. 이희영 선생은 불혹의 나이에 미국행을 택했다. 그가 창원 파티마병원에 사표를 냈을 때, 많은 이들이 그의 ‘깜짝’ 행보에 놀랐다. 그러나 이희영 선생은 ‘돌연히’도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다’라며 선을 긋는다. 그가 미국에서 수련을 받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한 초반이었다. 대략 10년 전 일이다.

수련의, 전공의, 그렇게 5년간의 짧지 않은 수련과정을 마치고 공중보건의를 시작하면서 이희영 선생은 처음으로 ‘개인’ 진료실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료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수술실이 없고, 대학병원과는 상대적으로 바쁘지 않은 근무 환경과, 격오지라는 지리적 제한으로 인해 퇴근 전후에도 전공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는 자기계발을 할만한 일을 찾던 중, 학창시절부터 동경해왔던 ‘해외 유학’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국내에서 대부분의 남성 전공의는 3년간의 군 복무 후, 전임의 과정을 지원하여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까지 세부 전공을 수련하게 된다. 이희영 선생도 전공의 시절 정형외과의 세부 과목 전공 선택을 두고 고민을 하였지만, 미국 유학을 결심한 후에는 모교에서 전임의 과정에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 중에 주로 영문 원서와 논문으로 공부하기에 본토에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한국의 정형외과 수련 과정이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미국 정형외과 교육과정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2013년 미국 LA 다저스 스타디움. /이희영 씨 제공
2013년 미국 LA 다저스 스타디움. /이희영 씨 제공

미국 현지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외국인이 미국에서 임상 활동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USMLE (U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 2차 필기와 실기 이상의 합격이다. 전임의를 지원한다면 3차까지 합격해야 한다. 2차 시험까지는 미국 의과대학 학생들도 졸업 전 4년간의 재학 동안 치루게 되는 시험이다. USMLE는 토익이나 토플처럼 시험 날짜를 본인이 지정하여 치를 수 있다. USMLE의 약자인 Licensing Examination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USMLE를 합격하면 면허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것과 동등한 자격을 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학위를 지녔다고 하여 의료 행위를 할 수는 없다. 주(State)마다 다르지만, 최소 1~2년간의 수련과정이 필수이다. 최소 지원자격을 갖춘 이후에는 ‘매칭 시스템(Matching System)’을 통해 지원->면접->합격->수련의 단계를 거쳐 전공의나 전임의로 수련할 수 있다. 국내 의사들이 많이 도전하는 내과, 신경과, 정신과 등의 과는 한국 경력과 상관없이 전공의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정형외과는 미국에서 외국 수련 경력을 인정해주는 과이다. 그렇기에 이희영 선생은 USMLE 3차 시험에 합격한 뒤, 전공의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전임의로 지원하였다. 그리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병원 정형외과 전임의로 합격하였다. 그에겐 군 복무 시절 처음 유학의 꿈을 꾸고 착실하게 계획을 세워온 지난 8년의 세월이 있었다.

“저는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대학 입시과정과 비슷한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입시 시험이 높다고 좋은 학교, 좋은 과에 합격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듯이 USMLE 시험 성적뿐만 아니라 연구 경험, 논문, 내신성적, 학과 이외 활동 경력, 자기소개서, 면접 등 다양한 평가 요소가 작용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운도 따라줘야 한다고 봐요. ‘Match’라는 과정이 지원자도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프로그램도 지원자는 선택해서 지망 순위를 매기고 서로 맞는 짝을 찾는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프로그램에서 나를 선택하면 그 프로그램에 매치되어 합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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