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다박의 이너뷰] 미국 전문의가 되기 위해 달리는 국내 엘리트 전문의 무한도전기 ②
[글렌다박의 이너뷰] 미국 전문의가 되기 위해 달리는 국내 엘리트 전문의 무한도전기 ②
  • 글렌다박 기자
  • 승인 2020.07.31 09:00
  • 수정 2020-08-03 08:14
  • 댓글 0

2014년 공중보건의를 마치며 미국으로 단기간 여행할 때의 모습. /이희영 씨 제공
2014년 공중보건의를 마치며 미국으로 단기간 여행할 때의 모습. /이희영 씨 제공

[한국스포츠경제=글렌다박 기자] 이희영 선생은 미국 미주리주립대학병원 정형외과의 전임의가 되면서 한국과 달리 수평적인 미국 의료 시스템을 경험했다. 병원 안에서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지 않으면 가혹한 평가는 결과로 이루어졌다. 과거 전공의가 해임된 적이 있는가 하면, 4년 차 전공의가 눈앞에서 유급을 하였다. 전임의의 경우 전공의 졸업 후 본인이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야에 지원하여 수련을 이어가는 것이기에 전공의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우를 받지만 그래도 수련은 힘들기 매한가지다. 특히, 이희영 선생의 경우는 한국에서 5년 이상의 전문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이희영 선생은 그동안 전문의로서 환자를 만나고 수술 여부를 논의하고, 수술한다면 시기, 최적의 수술 방법 등을 결정해서 수술방 및 수술을 주도하고 결과에 책임을 보이는 ‘과장’의 자리에 있다가 한순간에 수련을 받는 처지가 되니 답답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 상상했던 자유로운 토론, 교수와 동등한 위상을 지니는 전임의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미국이라고 해도 어떠한 수련의든 결국엔 을(乙)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희영 선생의 경우, 한국의 수직적인 문화에 오랜 시간 익숙해져 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기에, 언어적, 문화적 차이는 아직도 넘기 높은 장벽이다.

이희영 선생은 언젠가 대학에서 근무하는 그와 비슷한 배경의 한인 교수에게 ‘어떻게 하면 빨리 영어를 잘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하였다. 한인 교수는 그에게 ‘교수가 되면 된다’라고 답했다. 교수가 되면 직장동료든지 병원 직원들이 그만큼 대우를 해주고, 교수의 영어에 맞추어 준다는 뜻이었다. 수술 중에 교수가 좋아하는 음악도 직원들이 알아서 틀어준다. 집도의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줌으로 인해 심하게 딱딱해질 수 있는 수술방 분위기를 한껏 부드럽게 하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흥미 있는 차이점도 있다. 미국 병원은 직원 식당에서 한국처럼 급식을 나눠주지 않는다. 미국은 카페테리아에서 피자, 햄버거 같은 간단한 음식을 사서 일하는 중간마다 먹거나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에서는 ‘식사하셨어요. ’가 안부를 묻는 인사말로 통용되고, 식사 후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디저트를 먹으며 친밀도를 쌓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지위와 직급을 떠나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희영 선생은 한국의 회식 문화처럼 직원들과 개인적으로 교류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이희영 선생이 지난 1년간 미주리주립대학병원 정형외과 전임의 과정을 하며 느낀 한국과 미국의 의료 시스템의 차이는 결국 사회와 문화적 차이의 합이다. 미국 현지인들은 문화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고, 의학적 결정을 내리는데 모든 정보를 듣고, 알고 싶어 하며, 스스로 많은 공부를 하고 의사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병원을 방문한 환자에게 이희영 선생이 수술에 관한 설명을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더 자세히, 열심히 설명하였더라도 환자는 의외로 더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정형외과라는 과의 특성과 미국 중서부 중소도시라는 지역 경험이라는 한계가 존재하기에 문화적 차이 만으로만 미국과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의료 시스템에 할애되는 비용에 기인한 것도 있다. 미국은 사보험 위주의 민간의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국가 정책이 의료비를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일상에서도 일회용 제품을 많이 쓰기도 하지만, 의료 환경에서는 소모품 사용량이 엄청나고, 각종 직종의 의료 인력 및 병원 직원이 많기에 고비용의 의료이다.

“미국의 큰 병원이 있는 도시는 그 도시 대분 인구가 의사를 포함한 병원 직원입니다. 하지만 고비용이라고 해도 직장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고, 저소득 계층의 경우 사회안전망이 있어서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소위 미국 ‘레드넥’ 환자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은 낮은 의료비용으로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는 ‘의료 천국’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7년 예일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전임의 면접 위해 찾은 예일대교정. /이희영 씨 제공
2017년 예일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전임의 면접 위해 찾은 예일대교정. /이희영 씨 제공

고비용 의료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장점으로는 연구개발에 그만큼 자본 투자가 많으므로 최첨단의 장비, 기술은 대부분 미국에서 가장 먼저 개발이 된다. 무엇보다 사업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가장 먼저 개발된 것은 미국이지만 한국에서도 고성능의 스마트폰을 만든다. 그러나 처음 개발한 곳이 미국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최신 의료 기계나 장비들은 거의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처음 출시되고, 우리나라는 그런 제품을 개량하거나 국산화하여 사용하지만, 품질의 한계가 일정 부분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훌륭한 의료인력을 가진 나라도 드물다. 특히, 수술 실력은 미국 교수들보다 훨씬 나은 이들도 많다.

이희영 선생은 본디 전임의 과정을 1년만 마치고 귀국할 생각도 있었지만 어린아이 두 명을 포함하여 가족 모두를 동반해 연수를 나온 것이기 때문에 최소 2년은 지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국에서 임상 경력을 이어나가고 의사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영어도 점점 실력이 늘어가고 있고, 병원 일도 적응이 되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의사가 될 때까지 평생 살다가 공중보건의 3년 동안 시골에서 지내다 보니 서울의 높은 인구밀도와 교통체증을 벗어나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지방에서 봉직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미주리도 미국 안에서 시골이라고 할만한 지역인데 제일 높은 건물이 대학병원 일 정도로 고층빌딩도 없어서 지평선이 보이고 일 년 내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점이 좋습니다. 일과가 7시 이전에 일찍 시작해서 차가 밀리지도 않지만 그만큼 한적하고 넉넉한 곳입니다. 가족 중심 사회이다 보니 늦게 들어올 일도 없어서 가족들도 좋아하고 지금의 환경은 저의 라이프 스타일과 맞습니다.”

이희영 선생은 이제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전임의를 1년간 (2020~2021) 하게 되며, 다음연도(2021~2022)에는 볼티모어 메드스타 유니온 메모리얼 병원에서 3년 차 전임의 매치가 예정되어 있다. 그는 일 순위로 지원하였던 프로그램에 모두 매치가 되어 기대가 크다. 두 개 이상의 인증 프로그램에서 전임의를 수료한 후에는 미국 내 의과대학에 조교수로 지원할 계획이다. 그의 능력이 모자라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꾸준한 영어 공부도 해야 할 것이며, 비자 및 영주권 등 장기 거취를 위한 신분 문제도 해결해야 하므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미국 정형외과 학회에서는 5년 이상 조교수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3년간의 전임의 그리고 5년 이상의 조교수 경력 후에야 비로소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것이다. 전문의 면허가 없는 조교수라고 하여 대학 병원에서 임상이나 외래를 보는데 제약이 있거나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향후 2년간의 이희영 선생의 노력과 운에 따라 사실상 전문의가 될 수 있다.

“군 복무 중 USMLE 시험은 준비한 것도 일정 부분 그런 성격 탓일 수도 있는데, 고등학교, 대학교, 특히 의대 등 매주 계속되는 시험 환경에 익숙해져 그런지 시험이든, 자격증이든 어떤 목표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나태해지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저의 도전은 이제 막 첫 발걸음만 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목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저의 성격과 맞습니다. 쉽지 않고 짧지 않은 과정이지만 지금처럼 시간은 금방 흐를 거라 믿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쳐서 주저앉고 싶었던, 하지만 오기로 버텼던, 미주리주립대학병원에서의 1년간의 전임의 생활을 수료했다. 미국으로 오기 전, 이희영 선생은 한국에서 퇴근 후 영어 공부에만 오직 매달렸다. 그러나 실전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정말 어려웠다. 발음이 어눌한 것은 둘째 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지’, ‘실수하는 것은 아닌지’, 한 마디를 하려 해도 고민이 많다 보니 말하는 타이밍을 놓친 적도 많았다. 대화가 시작되면 음성은 들리지만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경우도 있었다.

“어쩔 땐 마치 미국드라마 여러 편을 동시에 틀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한편만 틀어놓아도 안 들리는 대사가 많을 만큼 아직은 부족한 영어 실력인데도 불구하고요. 대학에 성격이 급하고 무서운 주임 교수님이 계시는데 현지인 사이에서도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하는 분이십니다. 한번은 수술 중에 어떻게 대답해야 맞는 말인지 생각하고 있는데, “Answer me!!”라며 소리치셨습니다. 제가 큰 실수를 한 상황도 아닌데 모든 이들 앞에서 호통을 치시니 억울하기도 하고…. 수술이 끝나고 교수님께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무례하거나 교수님 말을 무시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제가 영어가 아직 힘들다고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늘은 어렵지만 좋은 수술들이었다….’라며 딴소리를 하시더군요. 미국 사람들도 껄끄러워하는 성격의 교수님이라서 그런가 보다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긴 합니다.”

미주리주립대학병원 정형외과 스포츠의학 분과에는 7명의 교수가 있다. 각각의 성격과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모두 다르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수술하는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미국이라고 모두 친절하거나, 합리적이고, 개방적이고, 논리적이며, 한국이라고 그 반대가 전혀 아니라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도 고집불통에 ‘욱’하는 성격의 교수도 어딜 가나 있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환자와 대면하며 진료하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5분도 채 이야기 안 하는 교수도 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그렇기에 어느 곳이 더 낫고, 어느 곳이 더 우월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희영 선생에게 더 깊은 의미로 남는 것은 ‘사람’이다. 그는 교회 목사님 같은 교수, 65세 나이에 활발하게 실험하고,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고, 주말마다 경기장에서 팀닥터로 일하는 열정적인 교수도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대만에서 이민 와서 영어 한마디 못하며 몇 년을 지내시다가 장학생으로 의대에 입학하셨던 교수도 만났으며,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가진 야구 선수 출신의 교수도 만났다.

그 많은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수술 기술 외에도 삶의 자세라던가, 성격, 진료 방식, 또한 배울 점과 배우지 말아야 할 점 등을 가까이서 보고 느꼈다. 한국의 다양한 멘토, 스승, 동료를 만나 장, 단점을 경험하고, 흡수하고, 배우며, 그렇게 쌓은 경험을 자신의 진료와 수술에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점. 이렇게 전임의는 수련 경험 중 최고의 장점이다.

“한국에서 안정적 자리, 높은 급여를 포기할 만큼 좋은 경험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40살이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삶은 길고 후회는 어떻게든 남으며, 배울 건 많으니까요.”

이희영 선생은 늦은 나이에 미국에 건너와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실감하고, 이방인으로서 ‘완벽한 미국인’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매일 그 장벽으로 인해 환자들과의 관계가 한국처럼 가까울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에서 전공의, 공중보건의, 봉직의를 하며 매우 많은 숫자의 환자를 만났고, 그런 경험을 통해 그의 성격에 맞게 환자와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었고 또 즐겼기 때문에 ‘미국에서 의사로 사는 것이 직업적으로 정말 행복한 일일까?’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한국에 귀국하는 것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희영 선생의 최종 목표는 미국 현지 대학 병원에서 정교수가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는 미국에 오기 전부터 목표한 전임의->조교수->부교수->정교수의 정해진 길을 가는 중이기에 꾸준히 이루어 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중단기적인 목표 가운데 각 단계마다 달성해야 할 세부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를 이루기 위해 능력과 지구력이 발산되어야 할 것이다. 정교수가 되고 싶은 이유는 세계 의학 발전이나 인류 건강에 이바지하는 대의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2019년 미주리 대학 미식축구팀 마지막 홈경기에서 동료 펠로우와 함께. /이희영 씨 제공
2019년 미주리 대학 미식축구팀 마지막 홈경기에서 동료 펠로우와 함께. /이희영 씨 제공

이희영 선생은 ‘의학발전’이라는 것은 임상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 발표한 논문들이 모여 출판되고, 출판된 것들이 모여 교과서가 되고, 교과서를 통해 전 세계 정형외과 의사들이 공부하고, 그런 지식이 모여 의학 발전이 되듯, 그의 수준에서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기여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앞서 말한 의미에 비춰 그에겐 ‘미국 전문의’, ‘한국 전문의’라는 국가적 차이도 없을 수도 있다. 현대 의학은 제도나 문화의 영향 때문에 국가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목표하는 방향은 같기 때문이다. 정형외과 영역에서 예를 들면 미국에서 개발한 새로운 수술 방법이 논문에 실리고, 학회에 발표되고, 세계 많은 의사가 공감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것은 표준 수술 기법으로 자리 잡는다. 이 ‘표준’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한국의 교수들이 추가 연구 결과나 개선된 방법을 논문으로 발표하면 또 그 결과가 반영되어 ‘표준’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의학 수준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희영 선생은 본디 의사가 되고 싶었던 초심을 기억한다. 어려움도 있지만, 가족, 친구,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된 직업인 의사. 그는 무엇보다 현재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면서 또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오늘 자로 그는 미국 미주리주립대학병원 정형외과 스포츠의학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아이오와주립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족부족관절 (발발목) 전임의 과정을 이어나가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그의 앞길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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