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민. /OSEN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두산 베어스 내야수 허경민(30)은 가을만 되면 불타오르는 ‘가을 남자’다. 포스트시즌 통산 타율이 0.353(150타수 53안타), OPS가 0.856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0.375로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탰다. 두산의 핫코너를 지키며 두산 왕조의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뛰어난 성적에 비해 상복이 없었다. 임팩트가 부족해 다른 선수에게 밀린 경우가 많았다. 두산팬들은 ‘허묻두살’ ‘가을 허묻’이란 짓궂은 별명을 선사했다. ‘허경민의 활약이 (다른 선수의 더 큰 활약에) 묻혀야 두산이 살아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허잘두살(허경민이 잘해야 두산이 산다)’로 별명을 바꿔야 할 듯하다.

허경민은 2일 오전까지 54경기 타율 0.390(205타수 80안타) 4홈런 30타점 31득점 9도루 OPS 0.938를 기록 중이다. 손가락 부상으로 6월엔 8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던 그는 지난달 31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 규정 타석을 채우며 멜 로하스 주니어(30ㆍKT 위즈)를 제치고 타격 1위로 올라섰다. 

두산 타자 중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7월 한달간 22경기에서 타율 0.494(83타수 41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출루율 역시 0.538로 1위를 기록하며 타석에서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6월까지 0.316이던 타율도 0.390까지 치솟았다. 타격 7관왕에 도전하고 있는 로하스의 강력한 대항마가 됐다.

8월에도 고감도 타격감을 이어갈 태세다. 허경민은 1일 창원 NC전에 6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해 5타수 2안타 2득점 1볼넷으로 활약했다. 두산이 1-3으로 뒤지던 4회초 1사에서 타석에 들어선 그는 NC 선발 마이크 라이트(30)를 상대로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뽑았다. 이 안타로 2015년 구자욱(27ㆍ삼성 라이온즈) 이후 5년 만에 2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6회에도 좌전안타를 추가하며 3경기 연속 멀티히트도 달성했다.

허경민(왼쪽). /OSEN

올 시즌 영양가도 최고다. 시즌 득점권 타율을 살펴봐도 52타수 27안타로 득점권 타율 0.519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선두를 지키고 있다. 7월 득점권에선 타율 0.708(24타수 17안타)의 괴물 같은 성적을 올렸다. 허경민은 주자가 없을 때 타율 0.336(119타수 40안타)를 기록했지만, 주자가 있을 때는 타율 0.465(86타수 40안타)를 올렸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은 2.55로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3.18)에 이어 2위다.

허경민은 원래 타격이 강점인 선수는 아니다. 지난해까지 3할 이상 타율을 기록한 시즌은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불과하다. 대신 뛰어난 수비 재능을 갖췄다. KBO리그에서 가장 수비가 좋은 3루수로 꼽힌다. 올해는 멀티 포지션까지 소화하며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지난달 주전 유격수 김재호(35)가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자신의 자리인 3루수 대신 유격수를 맡았다. 허경민은 광주일고 시절 동갑내기인 경북고 김상수, 충암고 이학주(이상 삼성), 경기고 오지환(LG 트윈스), 서울고 안치홍(롯데 자이언츠)과 함께 고교야구 ‘5대 유격수’로 불렸을 정도로 뛰어난 수비를 자랑했다. 김재호가 복귀하기 전까지 유격수 자리를 단단히 지키며 두산의 ‘살림꾼’다운 활약을 펼쳤다.

‘FA 로이드(프리에이전트 권리 행사를 앞둔 선수들의 비약적 성적 향상을 의미하는 말)’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다. 허경민은 올 시즌이 끝나고 생애 첫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을 조짐이어서 그의 가치는 나날이 치솟고 있다. “유니폼이 더러워져야 경기를 잘한 것 같다”는 그는 “타격 능력 향상은 영원한 숙제다. 팬들은 여전히 허경민이란 선수에 대해 타격보다는 수비 기대치가 높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타격이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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