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보문산 전망대에서 한화 팬들이 깃발 응원을 펼치고 있다. /박창숙 씨 제공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가 열린 시즌 초반, 일부 한화 팬들은 야구장이 아닌 산으로 향했다. 야구장이 내려다보이는 해발 400m의 보문산 정상 전망대에서 열띤 응원전을 펼치며 ‘직관(직접관람)’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한화 구단은 전망대에 ‘보문산 사서함(우체통)’을 설치해 팬들의 사연을 경기 중 전광판으로 소개했다. 깃발과 구호로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낸 한화 팬들은 지난 6월 1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18연패를 끊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화 구단은 4일 ‘팬 커밍데이’ 이벤트를 열고 무관중 기간 보문산 전망대에서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준 박창숙 씨와 장세진(이상 40) 씨를 시구ㆍ시타자로 초청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박 씨와 장 씨는 한화를 따라서 서울, 인천, 부산 등 전국 모든 야구장을 돌아다니는 ‘찐’ 한화 팬이다. 한 시즌에 100번 가까이 야구장을 방문한다. 비시즌에는 한화의 전지훈련을 보기 위해 스프링캠프지를 찾기도 한다. 장 씨는 “고향이 충남 부여여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한화팬이 됐다. 5년 전부터 대전 홈 경기는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직관하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 원정 경기는 가기 쉽지 않지만, 휴가를 내거나 시간이 될 때 무조건 간다”고 밝혔다.

보문산 전망대에서 응원을 한 이유는 뭘까. 박 씨는 “원래 등산이 취미어서 평소에 자주 보문산에 올랐다. 시즌 초반에 성적이 너무 안 좋았는데 멀리서나마 응원과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성적이 안 좋아도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장씨도 “저희 말고도 보문산에 응원을 하러 오신 한화팬들이 많았다. 1경기에 20~30명 정도는 됐다. 18연패를 끊었을 때도 전망대에서 두 손을 모아 응원했다. 연패 탈출이 확정됐을 때는 우승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고 웃었다.

안타깝게도 이날 경기가 폭우로 취소되면서 박 씨와 장 씨는 시구ㆍ시타를 하지 못했다. 학수고대하던 시구ㆍ시타 기회는 빗물에 씻겨 내려갔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오랜만에 야구장을 찾은 것 자체가 설레고 기쁘다고 했다. 장 씨는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KBO과 구단들에서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어서 안심된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직관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박 씨는 “많은 분의 노력으로 어렵게 관중이 입장할 수 있게 됐는데 팬들이 방역 수칙을 잘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화 골수팬인 박창숙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장세진씨(맨 오른쪽). /박창숙씨 제공

한화 홈팬들은 최근 수년간 팀이 부진한 성적을 내며 ‘암흑기’를 보내는 와중에도 열정적 응원으로 선수단에 기를 불어넣어 줬다. ‘보살 팬’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장 씨는 “모든 구단 팬이 보살이라고 생각한다. 한화가 팬층이 두껍다 보니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고 했고, 박 씨는 “한화 팬들은 1점의 소중함을 잘 안다. 성적과 상관없이 언제나 선수들을 응원하는 게 한화 팬들이다”라고 웃었다.

한화 팬들은 성적을 떠나 선수들이 근성 있는 플레이로 투혼을 보여주길 원한다. 장 씨는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팀이 되면 좋겠지만, 우승이 아니더라도 꾸준한 강팀이 돼서 열심히 응원하는 팬들에게 보람을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 씨도 “초반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경기가 많아서 속상했다. 패하더라도 끝까지 근성 있는 플레이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기까지 응원하는 팬들을 생각하고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5일 오전까지 한화는 19승 54패로 꼴찌에 처져 있다. 그래도 한화 팬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6월 초 대전 홈구장 입구에 ‘힘내라 한화 이글스 선수단, 팬들도 끝까지 응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구단 몰래 걸었다. 홈구장 인근 충무네거리에도 지난 주말 ‘한화 이글스 선수 여러분 힘내세요. 팬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응원 현수막을 설치했다. 장 씨는 “스트레스 안 받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직접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얼마나 더 스트레스를 받겠나. 힘든 시즌이지만, 올 시즌을 계기로 선수들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씨는 “젊은 피들에 기회를 많이 주고 있는데 리빌딩이 잘됐으면 좋겠다. 단기간에 성적이 좋아질 수는 없겠지만, 미래가 있는 팀이 됐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대전=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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