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배우 이정재가 새로운 악역으로 돌아왔다. ‘도둑들’ ‘관상’ ‘암살’ 등 다양한 작품에서 악역을 연기했지만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8월 5일 개봉) 속 악역은 ‘백정’으로 표현되는 극악무도한 캐릭터인만큼 전작들과 결이 다르다. 극 중 형을 살해한 청부살인업자 인남(황정민)을 끈질기게 좇는 레이 역을 맡아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심지어 패션 트렌드를 추구하는 듯한 스타일링으로 기존의 악역 캐릭터들과 변화를 줬다. 올백의 헤어스타일부터 화려한 패션, 타투까지 눈에 띄는 비주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레이 역은 독보적인 악역이다. 섹시하다는 관객들의 평도 있는데 이런 요소가 원래 있었나.
“섹시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 내 욕심인 것 같다. (웃음) 관객들에게 다른 면도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캐릭터를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맹목적으로만 연기하면 중반 이후부터는 지루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시나리오 자체에서 레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게 많지 않다. 연기와 비주얼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뒀고 많은 상의를 했다. 옷 자체에서 느낌적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려고 했다.”
-황정민 캐스팅이 이 영화의 출연 이유가 됐다고 했다. ‘신세계’(2013)와 같은 캐스팅이 부담이 되진 않았나.
“(황)정민 형과 ‘신세계’ 때 워낙 즐겁게 촬영했다. 마음속으로 늘 정민 형이나 (최)민식 형과 더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민 형과 이번 영화에서 역할을 바꾼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걸 의식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색깔이 다르다보니 내가 비슷한 표현을 다시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늘 체크했다.”
-황정민과 다시 만나 연기하니 어땠나.
“액션 촬영 분량이 꽤 많아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촬영 때는 각자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니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눴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같이 식사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아무래도 해외 로케이션 영화다보니 함께 대화를 할 일이 많았다.”
-‘사바하’ 이후 재회한 박정민의 연기는 어떻게 봤나.
“ 정말 천재인 것 같다. 본인도 아는 것 같은데 천재인 걸. (웃음) 그것마저도 안 들키려고 현장에서 아주 조용히 행동한다. 성격이 워낙 겸손하고 어떻게 저렇게까지 표현할까 싶은 순간이 있다. 참 자연스럽게 몸으로 표현한다. 내가 흉내내볼까 하더라도 저런 표현을 더 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엄청난 열정을 쏟고 여러 사람들과 논의를 거쳐 탄생된 작품이다. 결과물에 만족하는가.
“그렇다. 특히 첫 대결인 총 싸움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본 상으로는 첫 액션에서 마피아들과 액션하는 장면이 원래 없었다. ‘레이가 셔터 안으로 들어갔는데 태국 마피아들이 앉아있다’ ‘셔터가 올라가고 피 묻은 레이가 서 있다’가 다였다. 그런데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무술감독님이 액션신을 좀 써야겠다고 했다. (웃음) 갑자기 연습해서 찍게 된 장면인데 개인적으로 잘됐다고 생각한다. 액션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레이가 상대방을 제압할 때 어떤 식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스태프들과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동작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모든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했다. 어깨 파열 부상도 당하는 등 여러 고충도 있었을 텐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몸이 잘 안 움직인다. 마음처럼 빠르게 스피드가 안 나가는 게 제일 답답했다. 액션신을 찍다가 어깨가 파열됐는데 현지 병원에 가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촬영을 미룰 수는 없어서 수술은 아직 하지 못했다. 지금 또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 촬영 중이라 다 끝난 다음에 해야 하는 상황이다.”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해 배우 28년 차다. 끝없이 도전하는 이유가 있나.
“한계를 자꾸 느낀다. 오래 연기하다 보니 내 안에 있는 것, 아이디어도 다 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는 아주 큰데 이정재라는 사람을 많이 보여드려서 부담감이 크다. 솔직히 그럴 땐 운동이나 산책하다 보면 힘이 좀 생긴 것 같고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함께한 정민 형, 박정민 같은 연기를 보며 자극도 받는다.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어디든 가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 ‘헌트’를 통해 장편영화 감독 및 주연을 맡았다. ‘태양은 없다’(1999)로 함께한 정우성에게 출연을 제안했는데.
“이 정도면 짝사랑 같다. (웃음) 사실 ‘태양은 없다’ 후 두 작품 정도는 더 할 줄 알았는데 세월이 이렇게 흐를 줄 몰랐다. 예전부터 우리에게 작품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 둘이 의기투합해서 한 번 작품을 만들어 보자고 했고 그런 시도가 10년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더 진행이 되지 않았고 잘 풀리지 않는 여러 과정이 있었다. 뭔가 더 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헌트’라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정우성에게 출연 제안을 하게 됐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jwon04@sporbiz.co.kr